공유지의 비극(tragedy of the commons) — 각자 이득을 챙기면 왜 다 같이 손해 보는가
외부효과(externality)는 내 선택의 비용이 값에 실리지 못하고 남에게 흘러가는 어긋남이다. 이 어긋남이 쌓이면 공유자원이 무너지고 시장 실패(market failure)가 나타나며, 이를 막아 온 장치가 자치와 감시와 평판이다.
조별 과제가 끝나고 점수가 나왔다. 여섯 명이 같은 점수를 받았다. 그중 둘은 자료도 찾지 않았고 회의에도 나오지 않았다.
다음 학기에 또 조별 과제가 잡힌다. 지난번에 밤을 새운 사람도 이번엔 어디까지 할지 계산한다. 아무도 잘못된 선택을 하지 않았는데 결과는 모두에게 나쁘다.
각자에게 옳은 선택이 모여 전체를 망친다
이 구조에는 이름이 있다. 남이 치른 비용에 값을 내지 않고 올라타는 쪽을 무임승차자(free-rider)라 한다. 각자의 합리적 선택이 모여 전체의 손해로 끝나는 상황은 집단행동(collective action) 문제라고 한다.
경제학은 이런 자리를 시장 실패(market failure)라 부른다. 시장이 늘 실패한다는 말이 아니다. 대체로 잘 굴러가는 장치에 구멍이 나는 지점이 정해져 있다는 말이다.
목초지에 소가 한 마리씩 늘어난다
가장 자주 나는 구멍이 공유자원(the commons)이다. 주인 없는 목초지에 소를 한 마리 더 푼다. 이득은 온전히 내 것이지만 풀이 줄어드는 손해는 모두가 나눠 진다.
조별 과제와 같은 셈이다. 빠져서 아낀 시간은 온전히 내 것이고, 낮아진 점수는 여섯이 나눠 진다. 이렇게 내 행동의 비용이 값에 실리지 못하고 남에게 흘러가는 어긋남을 외부효과라고 한다.
오스트롬이 세 번째 길을 찾아낸다
교과서적 해법은 둘이었다. 울타리를 쳐 나눠 갖거나, 국가가 걷어 관리하거나. 조별 과제로 옮기면 각자 맡을 몫을 미리 잘라 주거나, 교수가 회의마다 들어와 감독하는 것이다.
엘리너 오스트롬은 세계 곳곳의 어장과 관개 수로를 뒤졌다. 중앙에서 지시하는 해법 없이 이용자들이 스스로 규칙을 만들고 서로 지키는지 살피는 것만으로 수백 년을 버틴 공동체가 있었다. 이 방식을 자치(self-governance)라 한다.
서로가 안 보이면 규칙이 종잇장이 된다
누가 얼마나 가져가는지 보이지 않으면 규칙은 그냥 종이다.
한쪽만 사정을 아는 상태를 정보 비대칭(information asymmetry)이라 한다. 보이지 않는 쪽은 실적을 줄여 보고할 이유가 생긴다. 아무것도 안 한 조원이 나도 할 만큼 했다고 말할 수 있는 것과 같다. 같은 비대칭이 보험에서 역선택과 도덕적 해이를 낳는 자리는 따로 짚을 값이 있다(K16_경제_위험과 정보의 경제학).
계약서로 다 막지는 못한다. 대신 오래 거래하는 시장에서는 평판 자본(reputational capital)이 쌓여 담보 노릇을 한다. 이번 한 번의 이득보다 앞으로 잃을 거래가 크면 속이지 않는다. 같은 얼굴들과 네 학기를 더 만나야 하는 조별 과제에서도 그렇다.
값을 미리 정하기 어려우면 위험을 나눈다. 결과가 나온 뒤에 값을 매기는 성과 기반 가격은 파는 쪽도 위험과 보상을 함께 지게 만든다. 반대로 농부와 정유사는 선물시장(futures market)에서 몇 달 뒤의 값을 미리 묶어 위험을 던다. 앞의 것은 결과를 보고 나누고, 뒤의 것은 결과를 보기 전에 못 박는다.
여섯 명에서 되던 일이 팔십억 명에서 막힌다
물론 이 지형도가 처방전은 아니다. 오스트롬이 찾은 자치도 아무 데서나 되지 않았다. 이용자가 많지 않고, 서로 얼굴을 알고, 누가 얼마나 가져갔는지 확인할 수 있는 곳에서만 굴러갔다.
대기는 이용자가 팔십억 명이고 서로 얼굴을 모른다. 여섯 명 조별 과제에서 되던 일이 여기서는 그대로 옮겨 붙지 않는다. 그런 자리에서는 새어 나간 비용을 값에 다시 실어 넣는 길을 찾는다(E23_생태환경_값이 진짜 비용을 말하지 않을 때).
시장 실패라는 말은 시장을 버리라는 신호가 아니다. 어떤 비용이 값에 실리지 못한 채 새어 나가고 있는지 짚으라는 요구에 가깝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