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어 배경지식 E05사회 심리3분 · 누구나 열람

내재적 동기와 발달(intrinsic motivation) — 아이는 어떻게 배우는가

내재적 동기는 일 자체가 목적이어서 생기는 동기다. 보상은 그 동기를 밀어내고, 아이는 빈 그릇이 아니라 이미 자기 설명을 가진 학습자라서 배움은 그 설명을 다시 짓는 일(preconceptions)이 된다.

아이가 몇 달째 매일 그림을 그린다. 어른이 기특해서 그림 한 장에 스티커 하나를 주기 시작한다.

몇 주 뒤 스티커가 떨어진다. 더 줄 것이 없어지자 아이는 그림을 그리지 않는다.

"보상은 왜 좋아하던 일을 그만두게 했을까."

스티커가 붙는 순간 그림이 수단이 된다

그림은 원래 그 자체가 목적이다. 그리는 것 말고 다른 이유가 필요 없었다.

스티커가 붙자 그림은 스티커를 얻는 수단이 된다. 수단은 목적이 사라지면 같이 사라진다. 스티커가 끊기니 그릴 이유도 끊긴다.

일 자체가 목적이어서 생기는 이런 동기가 내재적 동기다. 안에서 솟는 힘이라 결과를 미리 정해 줄수록 자리를 잃는다. 무엇을 어디까지 그릴지가 다 정해지면 아이가 할 일은 정답 맞히기뿐이다.

밖에서 걸어 준 유인이 도리어 힘을 빼는 일은 동조와 사회 규범(conformity) — 남이 보고 있을 때 우리는 달라진다의 경쟁 유인에서도 같은 모양으로 나타난다.

아이 머릿속에는 이미 자기 설명이 들어차 있다

아이는 무거운 것이 가벼운 것보다 빨리 떨어진다고 여긴다. 배우기 전에 이미 품고 있는 이런 설명을 선입 개념이라 한다. 반복 암기식 수업(rote instruction)으로 덮어도 밑에 남았다가 시험이 끝나면 되돌아온다.

그래서 학습은 새 지식을 얹는 일이 아니다. 학습자가 자기 설명을 다시 짓는 일이다. 그림도 없던 기술을 얹는 일이 아니라, 얼굴이 이렇게 생겼다고 여기던 생각을 고쳐 짓는 일이다.

손만 움직이면 재미로 끝난다

손으로 해 보는 활동(hands-on)만으로는 모자란다. 즐거웠는데 무엇을 알게 됐는지는 남지 않는 수업이 그렇다.

왜 그렇게 되는지 묻고 따지는 탐구(inquiry), 무엇을 알고 무엇을 모르는지 살피는 메타인지(metacognition)가 붙어야 활동이 학습이 된다. 그림을 백 장 그렸다고 그림을 알게 되지는 않는다.

자기가 무엇을 모르는지 확인하며 읽기를 조절하는 훈련은 K24_독서이론_읽기를 읽는 법에서 독서 이론의 이름으로 다시 나온다.

타고난 것과 길러진 것이 서로를 끌어당긴다

오래도록 본성이냐 양육이냐(nature versus nurture)를 물었다. 그림을 잘 그리는 아이를 두고 타고났느냐 많이 그려서냐를 묻는 것과 같다.

그러나 유전자가 정한 몫과 환경이 만든 몫을 잘라 나눌 수는 없다. 유전자는 환경이 신호를 보내야 켜진다. 어떤 환경에 놓이는지도 타고난 기질이 끌어당긴다. 그래서 요즘의 표현은 양육을 통한 본성(nature through nurture)이다.

아이가 시간과 거리를 아직 갈라 놓지 못한다

피아제는 아이가 어른과 다른 단계를 지난다고 봤다. 두 자동차가 동시에 출발해 동시에 멈췄는데 한 대가 더 멀리 갔다. 어린아이는 그 차가 더 오래 달렸다고 답한다. 시간에 대한 개념(conception of time)이 거리에서 아직 떨어져 나오지 않았다.

시작은 훨씬 이르다. 태어난 지 몇 시간 된 아기가 어른이 혀 내미는 것을 보고 따라 한다. 자기 얼굴을 본 적도 없는데 그렇게 한다.

사람 쪽 자극에 먼저 반응하는 타고난 성향(innate disposition)이 있고, 상대를 '나 같은 존재'로 놓는 데서 이 흉내가 나온다는 설명이 있다.

물론 모든 보상이 동기를 죽이지는 않는다. 애초에 하기 싫은 일에는 보상이 시작 버튼이 된다. 그림에 관심이 없던 아이였다면 스티커가 붓을 들게 했을 것이다. 값이 붙어 위험해지는 쪽은 이미 하고 싶어서 하던 일이다.

가르치는 쪽이 정할 수 있는 것은 학습 결과가 아니라 학습이 일어날 조건까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