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조와 사회 규범(conformity) — 남이 보고 있을 때 우리는 달라진다
동조는 남들이 하는 방식에 자기 행동을 맞추는 일이다. 누가 보고 있다는 사실은 각성을 올려 촉진과 억제를 함께 낳고, 규범(norm)과 사회 비교는 개인의 행동을 집단 쪽으로 끌어당긴다.
연습실에서 혼자 칠 때는 한 번도 틀리지 않던 곡이 무대에 오르자 첫 마디부터 손이 굳는다.
같은 무대에서 옆자리 사람은 평소보다 잘 친다. 십 년을 친 곡이라고 했다.
"관객은 연주를 돕는가, 망치는가."
무대에 오르자 십 년 친 손과 덜 익은 손이 갈린다
둘 다 맞다. 누가 보고 있다는 사실은 각성을 끌어올린다. 각성은 심장이 빨라지고 신경이 곤두서는 상태다. 각성이 높아지면 그 사람에게 가장 익은 반응이 튀어나온다.
십 년을 친 사람에게 가장 익은 반응은 제대로 친 그 곡이라 성적이 오른다. 연습실에서 틀리지 않았다는 것과 몸에 배었다는 것은 다르다. 아직 덜 익은 사람에게 튀어나오는 것은 자주 틀리던 그 자리라 무너진다.
무대공포(stage fright)는 재능의 문제가 아니다. 숙련도와 관객이 만나는 자리의 문제다. 하나의 규칙이 촉진(social facilitation)과 억제라는 반대 결과를 함께 낳는다.
아무도 정하지 않은 규칙이 객석을 조용하게 만든다
집단이 개인에게 거는 힘은 대개 규범이라는 이름으로 온다.
누군가 어떤 방식으로 행동하고 옆 사람이 거기 맞춘다. 그렇게 행동의 규칙성이 생기고, 그 규칙성이 오래되면 "다들 그렇게 한다"가 "그렇게 해야 한다"로 바뀐다.
곡이 완전히 끝나기 전에는 박수를 치지 않는다는 규칙도 그렇게 자리를 잡는다. 정한 사람도 없고 적어 둔 곳도 없다.
어겼을 때 따라오는 제재(sanction)도 대개는 벌이 아니라 눈길과 침묵이다. 악장 사이에 혼자 손뼉을 치면 딱 그만큼이 돌아온다. 정한 사람이 없는데도 지켜지는 이런 규칙의 성격은 E18_철학법정치_규칙은 무엇을 하는가의 구성적 규칙과 맞닿는다.
혼자 다른 방식을 몇 달째 고집하는 사람이 있다
소수가 다수를 바꾸는 일도 있다(minority influence). 조건은 수가 아니라 흔들리지 않는 일관성(consistency)이다.
같은 말을 상황이 바뀌어도 같은 방식으로 하는 사람은 다수를 불편하게 만든다. 왜 저렇게까지 하는지 생각하게 만든다. 다들 하던 대로 연습하는 자리에서 혼자 다른 방식을 밀고 가는 사람이 그렇다.
다수에 맞추는 변화는 사람들 앞에서만 유지된다. 소수가 만들어 낸 변화는 속에서 일어나(conversion) 혼자 있을 때도 남는다. 잘 굴러가는 다수의 방식에 굳이 질문을 던지는 이 자리를 리더십과 협상(negotiation) — 조직은 어떻게 움직이는가는 리더십이라 부른다.
옆자리를 보는 순간 목표와 체념이 같이 온다
자기보다 나은 사람을 올려다보는 상향 사회 비교(upward social comparison)는 목표를 주기도 하고 의욕을 꺾기도 한다.
옆자리에서 십 년 친 곡을 치는 사람을 본다. 저렇게 되고 싶다는 마음과 저기까지는 못 간다는 마음이 같은 자리에서 나온다.
경쟁 유인(competitive incentives)을 걸면 모두가 더 열심히 할 것 같다. 그러나 이길 가망이 없다고 판단한 사람은 그 자리에서 노력을 접는다. 밖에서 붙인 유인이 동기를 오히려 밀어내는 장면은 내재적 동기와 발달(intrinsic motivation) — 아이는 어떻게 배우는가의 보상 이야기와 겹친다.
무대에 오를 옷을 고르는 일이 연주에 붙어 있다
집단은 사람을 묶기도 한다. 무대에서 내려와 함께 웃는 일은 소속감을 확인하는 절차에 가깝다. 상대의 자리에서 생각해 보는 일은 갈등을 없애지는 못해도 다룰 수 있게 만든다.
자기를 소개할 때 직업부터 말하고, 옷차림으로 자기가 어떤 사람인지 내보이는 것도 같은 결이다.
정체성은 혼자 정해 두는 것이 아니라 남들 앞에서 수행된다. 보이는 자리마다 그때그때 해 보이는 일에 가깝다.
혼자 있을 때의 자신도 관계 속의 자신이다
물론 관찰이 늘 같은 세기로 작동하지는 않는다. 잘 아는 사람들 앞과 낯선 사람들 앞이 다르고, 평가받는 자리인지 아닌지에 따라서도 달라진다.
혼자 있을 때의 자신이 진짜이고 사람들 앞의 자신은 꾸민 것이라는 생각은 사실과 다르다. 사람은 어느 쪽에서도 관계 속의 자신으로 행동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