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기 조직화(self-organization) — 중앙 통제 없이 질서가 생긴다
자기 조직화(self-organization)는 개체가 국지 정보에만 반응하는데 전체의 질서가 생기는 현상이다. 새 떼의 방향 전환과 꿀벌 군집의 노동 조절이 그렇게 이뤄지고, 정교한 행동을 정교한 마음으로 읽는 의인화(anthropomorphism)는 함정이 된다.
해 질 무렵 하늘에서 새 떼가 한꺼번에 방향을 튼다. 수백 마리가 부딪히지 않고 같은 쪽으로 접힌다. 누가 신호를 보낸 것처럼 보인다.
그 신호를 보내는 새는 어느 것인가.
무리의 모양을 아는 새는 한 마리도 없다
없다. 각자가 가까이 있는 몇 마리와 거리와 방향만 맞춘다. 그러면 아무도 전체를 보지 않아도 무리가 한 몸처럼 움직인다.
부분의 단순한 규칙에서 전체의 질서가 나오는 이 현상을 자기 조직화라고 한다. 위에서 지시하는 자리가 없는데도 아래에서 모양이 솟는다.
벌이 기다린 시간이 벌집 전체의 몫을 정한다
물을 길어 온 채집벌은 벌집 전체에 물이 얼마나 필요한지 모른다. 아는 건 하나뿐이다. 돌아왔을 때 물을 받아 갈 일벌을 만나기까지 기다린 하역 시간.
받아 갈 벌은 제게 필요할 때만 받는다. 오래 기다리면 군집에 이미 넉넉하다는 뜻이고, 그러면 채집을 줄인다. 금방 넘기면 아직 모자란다는 뜻이고, 그러면 8자 춤(waggle dance)을 춰 동료를 그쪽으로 보낸다.
8자를 그리며 도는 각도와 시간으로 자원이 어느 쪽에 얼마나 떨어져 있는지 알리는 춤이다.
개체는 제 몸에 닿은 국지 정보(local information)에만 반응하는데 군집 전체의 노동력이 조절된다. 새 떼와 다르지 않다. 벌은 제가 기다린 시간만 알고, 새는 옆의 몇 마리만 안다.
둥글게 선 무리와 줄지어 선 무리가 갈린다
위험을 살필 때도 같은 원리다. 무리에서 한 마리가 고개를 들면 옆의 개체도 든다. 이렇게 상태가 옆으로 번지는 것을 정서 전염(emotional contagion)이라고 한다.
포식자를 살피는 경계 행동(antipredatory scanning)이 얼마나 맞는지는 배치가 정한다. 서로가 다 보이는 원형 배치에서는 잘 맞고, 가장 가까운 이웃만 보이는 일렬 배치에서는 덜 맞는다.
새 떼가 한 몸처럼 접히는 것도 각자에게 이웃이 보이기 때문이다. 보이지 않으면 규칙이 있어도 전해지지 않는다.
옆 사람의 상태가 그대로 옮아 오는 이 번짐은 사람의 동조와 규범에서도 되풀이된다(동조와 사회 규범(conformity) — 남이 보고 있을 때 우리는 달라진다).
질서를 보면 그것을 만든 머리부터 찾는다
여기서 조심할 게 있다. 정교한 행동을 보면 정교한 마음을 넣어 읽고 싶어진다. 이걸 의인화의 함정이라고 한다.
하늘의 새 떼를 보고 신호 보내는 새부터 찾은 것이 바로 그 함정이다.
개미가 굽이진 길을 남기고 해변이 그 굽이를 만든다
허버트 사이먼은 해변을 가로지르는 개미를 예로 들었다. 개미가 남긴 경로는 굽이지고 복잡하다. 그러나 그 복잡함은 개미의 내적 복잡성이 아니다. 모래언덕과 조약돌이 만든 해변의 복잡함이다. 개미의 규칙은 단순하다.
복잡한 행동이 복잡한 내면에서 오지 않는다면 어디서 오는가. 환경에서 오고, 몸의 구조에서 온다.
사람의 손은 엄지와 다른 손가락의 지문 면을 맞대는 정밀 파지(precision grip)를 한다. 납작한 손톱은 영장류 대부분이 가졌고, 갈라지는 자리는 유난히 길고 힘 있는 엄지다. 이 손 없이는 석기를 다듬는 문화가 열리지 않았다.
무엇을 할 수 있는지를 마음이 아니라 몸이 먼저 정해 놓은 셈이다. 생각이 머리 안에서만 일어나지 않고 몸과 환경에 걸쳐 있다는 관점이 여기서 나온다(E21_철학법정치_주체와 의식과 몸).
흉내 낸 새 떼가 진짜 새 떼는 아니다
단순한 규칙 몇 개면 무리의 움직임을 화면에 그려 낼 수 있다. 그렇다고 실제 동물이 그 규칙으로 움직인다는 증거가 되지는 않는다. 모형이 그럴듯해도 진짜 기제는 따로 확인해야 한다.
그래도 하나는 남는다. 질서가 보인다고 해서 그것을 만든 자리를 찾을 필요는 없다는 것.