관심 경제(attention economy) 정리 — 공짜 서비스의 진짜 상품은 나
관심 경제(attention economy)는 사람의 관심을 희소한 자원으로 보고 그것을 사고파는 시장으로 디지털 서비스를 설명하는 틀이다. 무료 서비스의 수익 구조와 국경을 넘는 플랫폼 노동, 기술이 눈에 띄지 않게 될 때 성공한다는 역설까지 이 틀 위에서 이어진다.
영상 하나만 보고 자려고 했다. 다 보고 나니 다음 영상이 벌써 돌아가고 있다. 그것도 보고, 그다음 것도 본다.
정신을 차리니 사십 분이 지나 있다. 돈은 한 푼도 쓰지 않았다.
무료 서비스가 무료가 아니라는 말은 이제 흔하다.
"그러면 거기서 팔린 것은 무엇인가."
볼거리는 끝없이 쌓이고 관심만 바닥난다
관심 경제라는 말이 여기서 나온다. 사람의 눈길 자체가 사고팔리는 물건이 된 시장이라는 뜻이다. 하루에 쓸 수 있는 관심은 정해져 있는데 볼거리는 무한하다. 희소한 쪽에 값이 붙는다.
광고주가 사는 것은 화면이 아니라 그 화면 앞에 붙들린 몇 초다. 그 사십 분이 팔린 물건이다. 돈을 안 냈으니 공짜였던 게 아니라 시간으로 값을 치렀다.
다음 영상이 저절로 돌아가게 누군가 짜 놓는다
추천 알고리즘(recommendation systems)은 그 몇 초를 늘리는 장치다. 좋은 것을 골라 주지 않는다. 다음 것을 계속 보게 만드는 게 목적이다.
설득을 노리고 컴퓨터를 설계하는 연구를 따로 캡톨로지(captology)라 부른다. 그만큼 이것은 부작용이 아니라 설계다. 무료 서비스가 이용자를 위해 있다는 통념이 뒤집히는 자리다.
이 설계가 한 사람의 화면을 어떻게 좁히는지는 E29_미디어_우리는 같은 것만 본다에서 에코체임버라는 이름으로 다시 나온다.
그 영상의 자막을 누가 어디서 달았는지 아무도 묻지 않는다
예전에는 일이 장소에 붙어 있었다. 서울의 일은 서울 사람이 했다. 클라우드워크(cloudwork)가 그 붙음을 떼어 냈다. 일감을 인터넷으로 받아 어디서든 해서 보낸다.
업무를 잘게 쪼개 놓으면 누가 어디서 하든 상관없어진다. 그래서 외주가 국경을 넘는다.
언제든 일을 맡을 준비가 된 전 지구적 예비 노동력(global reserve army)이 생기면 값을 정하는 힘은 일하는 쪽에서 맡기는 쪽으로 넘어간다.
일을 잘게 쪼개 값을 새로 매기는 이 변화는 기계가 숙련과 장인의 자리를 어떻게 옮기는가(자동화와 노동(automation) — 기술이 바꾸는 것은 기계가 아니라 관계)와 한 몸이다.
자동 재생이 무슨 기술인지 아무도 생각하지 않는다
새 기술은 우리를 다른 세계로 데려갈 때 혁명이 된다고들 한다. 실제로는 반대다.
산업혁명기의 모터가 그랬듯, 기술은 생활에 스며들어 눈에 띄지 않게 될 때 힘을 갖는다. 자동 재생이 딱 그 자리에 있다. 사십 분이 그렇게 지나갔다.
사람 쪽에 기계를 맞추는 인간 중심 컴퓨팅(human-centric computing)이 노리는 것이 이 자연스러운 융합이다. 교실도 마찬가지다. 새 기기가 신기함과 좌절의 대상으로 남아 있는 동안은 통합이 아니다.
기기가 의식되지 않는 조력자가 되어 수업의 목적 뒤로 물러설 때 비로소 통합됐다고 한다.
물론 이 구도를 모든 신기술에 갖다 붙일 수는 없다. 흡수되지 못한 채 사라지는 기술도 많고, 흡수됐기 때문에 더 다루기 어려워지는 기술도 있다.
그 사십 분에 사람이 그리지 않은 그림이 섞인다
인공지능이 사람의 일을 하나씩 복제한다. 체스가 넘어갔고 작곡이 넘어갔고 그림이 넘어갔다. 우리를 남다르게 만드는 것의 목록이 그만큼 짧아진다.
그런 그림이 섞여 있어도 알아채기 어렵다. 목록에서 하나가 빠질 때마다 사람은 인간이 무엇에 쓸모 있는 존재인지 다시 묻고, 이 되물음이 길게 이어지는 상태가 정체성의 위기(identity crisis)다.
다만 그 물음이 인간이 무엇인지를 도로 또렷하게 만든다. 인공지능의 가장 큰 쓸모가 생산성이 아니라 그 질문일 수 있다.
그 목록에 그림이 들어온 것은 잡음을 조금씩 걷어 내며 없던 화면을 세우는 K21_기술_디지털 영상과 생성 AI의 확산 모델이 나오면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