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시 교통과 오버투어리즘(overtourism) — 도시는 어떻게 움직이고 팔리는가
오버투어리즘(overtourism)은 방문객 수가 그 장소가 감당할 물리적 수용력을 넘어섰다고 보는 상태를 가리키는 말이다. 대기 시간을 정하는 것은 속도가 아니라 운행 빈도라는 대중교통의 원리부터 라스트마일 물류와 관광의 상업화까지가 한 줄로 이어진다.
정류장에서 앱을 본다. 다음 차가 23분 뒤다. 그 버스는 목적지까지 15분이면 간다. 합치면 38분이다. 걸어가면 35분이다. 걷기로 한다.
이 계산이 도시 교통을 이해하는 출발점이다. 사람이 실제로 겪는 이동 시간은 차가 달린 시간에 기다린 시간을 더한 것이다.
"빠른 노선과 자주 오는 노선 중 무엇이 먼저인가."
시속을 올려도 정류장의 23분은 줄지 않는다
대중교통에서 대기 시간을 정하는 것은 속도가 아니라 운행 빈도(frequency)다. 배차 간격이 30분이면 시속을 아무리 올려도 시간표에 맞춰 나서지 않는 사람에게는 평균 15분의 기다림이 그대로다.
그 정류장에 필요한 것은 더 빠른 버스가 아니라 더 잦은 버스다. 다들 시간표를 보고 움직이는 첨두 시간대 통근 노선이라면 속도를 앞세워도 된다.
하루 중 첫차부터 막차까지의 운행 시간대도 같은 무게를 갖는다. 밤 열 시에 끊기는 노선은 열한 시에 퇴근하는 사람에게는 없는 노선이다.
차를 모는 사람의 시간에는 그 23분이 없다
이 점을 놓치는 것을 운전자의 착각(motorist's error)이라 부른다. 늘 차를 모는 사람은 시동을 걸면 곧 출발한다. 그래서 교통을 속도의 문제로만 본다.
어떤 교통 사업을 두고 의견이 갈릴 때 그 대립은 자료 해석의 차이가 아닌 경우가 많다. 각자 어떻게 이동하는가가 다를 뿐이다.
그 정류장 앞의 주차 공간을 없애는 계획은 차로 다니는 사람에게는 손실이고 걷기로 한 사람에게는 이득이다. 교통공학이 내놓는 수치는 이 차이를 대신 조정해 주지 않는다.
마지막 한 구간에서 자전거가 트럭을 앞지른다
물건이 물류창고를 떠나 문 앞에 닿는 마지막 구간(last-mile)이 배송 비용에서 가장 큰 몫을 차지한다.
밀도가 높고 혼잡이 심한 도심에서는 화물 자전거(cargo bicycle)가 트럭보다 빠르다. 친환경이라서가 아니라 좁고 막힌 곳에서 실제로 더 낫기 때문이다. 걷는 편이 빨랐던 그 35분과 같은 계산이다.
도시가 자연을 바깥에 두고 안에 조각을 들여놓는다
도시 안에 공원을 두는 설계에는 자연과 도시가 서로 맞선다는 생각이 깔려 있다. 자연을 도시 바깥의 것으로 여기니 도시 안에 자연을 대신할 조각을 따로 마련한다.
공원은 자연이 아니라 자연에 대한 어떤 표현이다. 관념이 이렇게 공간의 형태로 굳는 과정은 지도 투영법과 등고선(map projection) — 공간은 중립적으로 주어지지 않는다에서 지도와 건물이 관점을 실어 나르는 방식과 같다.
사람 수는 그대로인데 몰리는 시각에 도시가 멈춘다
도시는 팔리기도 한다. 관광이 늘면 사는 사람과 오는 사람(hosts and guests) 사이에 경제만이 아니라 언어와 관습이 바뀌는 사회문화적 영향이 생긴다.
오버투어리즘은 관광객이 너무 많아 사는 사람이 못 견디게 된 상태를 가리킨다. 방문객 수가 그 장소가 감당할 물리적 수용력(physical capacity)을 넘었다는 뜻이다. 이 말에는 장소를 정해진 크기의 그릇으로 보는 전제가 깔려 있다.
같은 인원이 와도 언제 어디로 어떻게 흩어지느냐에 따라 견딜 수 있는 정도는 달라진다. 몰리는 시각에만 23분을 기다리게 되는 것과 같다.
보여 줄 유산을 누가 어떤 기준으로 고르는가라는 물음은 E31_인류학_과거는 발견되지 않고 선택된다와 그대로 겹친다.
팔기 좋게 다듬을수록 원래 이유가 지워진다
물론 관광을 폐해로만 볼 일은 아니다. 그 수입이 없으면 유지되지 못할 축제와 유적이 많다.
다만 무엇을 기억하려고 시작한 행사도 팔리기 좋게 다듬는다. 그러는 사이 볼거리(culturtainment)만 남고 원래의 메시지는 옅어진다.
도시가 어떻게 움직이는지와 어떻게 팔리는지는 같은 질문의 두 면이다. 그 공간이 누구의 하루에 맞춰 짜였는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