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어 배경지식 E02인지심리3분 · 누구나 열람

주의와 지각의 분업(attention) — 뇌는 하나가 아니다

주의는 들어온 자극 가운데 일부만 의식 위로 올리는 좁은 조명이다. 지각은 형태와 색과 운동이 서로 다른 경로에서 따로 처리된 뒤 합쳐진 결과이고, 반복된 경험은 신경망(neural network)을 그때그때 다시 짠다.

익숙한 길을 운전해 집 앞에 도착한다. 신호를 지켰고 차선도 두 번 바꿨다.

그런데 그 이십 분 동안 머릿속으로는 내일 할 일을 정리하고 있었다. 어느 골목에서 어떻게 돌았는지는 하나도 기억나지 않는다.

"그 운전은 누가 했을까."

핸들을 돌린 쪽과 내일을 꼽던 쪽이 다르다

오래되고 빠른 회로가 익힌 동작을 알아서 처리한다(autopilot). 의식적 사고(conscious mind)는 그동안 다른 데로 간다.

둘은 한 사람 안에서 동시에 돌아갔다. 기억을 남긴 쪽은 뒤쪽뿐이다.

자동 처리는 빠른 대신 거칠어서 가끔 틀린다. 착시는 그 회로가 성급하게 내놓은 답이다. 빠른 회로와 힘든 사고의 이 분업은 판단에서도 그대로 이어져 이중처리와 휴리스틱(heuristic) — 빠른 직관과 느린 계산의 두 갈래가 된다.

신호등과 표지판이 서로 다른 길로 들어온다

눈앞의 장면은 하나로 보인다. 그러나 형태와 색과 운동은 서로 다른 경로를 따라 따로 처리된 뒤 합쳐진다.

신호등의 빨강과 표지판의 모양과 옆 차선 차의 움직임은 운전하는 사람에게 한 장면으로 온다. 실은 셋이 각각 다른 길을 지나 하나로 붙는다.

이 분업은 뇌가 부분적으로 손상됐을 때 드러난다. 색을 전혀 보지 못하면서 물체의 모양과 움직임은 정확히 보는 사람이 있다. 반대로 움직임만 보지 못해 흐르는 물이 얼어붙은 유리처럼 보이는 사람이 있다.

무너진 자리들을 모으면 성할 때의 기능 구조(functional architecture)가 거꾸로 드러난다. 기능 구조란 어떤 일을 어느 부분이 맡는지의 짜임이다. 어느 부품이 빠졌을 때 무엇이 안 되는지를 보고 전체 설계를 되짚는 셈이다.

앞차가 멈추면 조명이 브레이크 등만 남긴다

들어온 것이 다 의식에 오르지는 않는다. 주의는 좁은 조명(attentional spotlight)에 가깝다.

앞차가 갑자기 멈추면 그 빛이 좁아진다. 브레이크 등 말고는 아무것도 남지 않는다. 여유가 있을 때는 넓어져 지금 일을 전체 안에 놓고 보게 된다.

같은 사건이 어떤 날은 재앙이고 어떤 날은 지나가는 일이다. 사건이 달라서가 아니라 빛의 폭이 달라서다.

같은 이십 분이 어떤 날은 길고 어떤 날은 짧다

몸속의 심리적 시계(psychological clock)는 벽에 걸린 시계와 따로 간다.

새로운 자극이 많으면 시계로 잰 같은 지속(duration)이 길게 느껴진다. 똑같은 일과가 반복되면 한 달이 며칠처럼 지나간다. 그 이십 분이 눈 깜짝할 사이였던 것도 그래서다. 매일 지나는 길에는 새로 들어올 것이 없다.

처음 그 길을 돌던 날의 반복이 자국으로 남는다

뇌는 완성된 채로 태어나지 않는다. 잘 바뀌는 기관이라 자주 함께 쓰인 연결은 강해지고 쓰이지 않은 연결은 잘려 나간다.

그 길을 처음 운전하는 날에는 골목 하나마다 온 신경을 쓴다. 지금 알아서 도는 것은 재능이 아니라 반복이 남긴 자국이다. 신경망은 그 사람이 무엇을 반복했는지의 기록에 가깝다.

문자는 오천 년쯤 된 발명이다. 진화가 읽기 전용 회로를 따로 만들 시간이 없었다. 그래서 뇌는 있던 자리를 재활용한다.

운전하며 표지판의 글자를 읽을 때 켜지는 시각 단어 형태 영역(visual word-form area)은 원래 사물의 윤곽을 알아보던 곳이다. 서로 무관하게 생긴 문자 체계들이 몇 가지 획 모양을 공유하는 것도 우연이 아니다. 뇌가 이미 잘 다루던 모양만 살아남았다.

그 오천 년짜리 발명이 바깥에서 무엇을 바꿨는지는 E27_언어문자_쓰기는 어떻게 세상을 바꿨나 쪽의 이야기다.

나뉜 채로 돌아가는데 하나로 느껴진다

물론 나뉘어 있다고 해서 따로 노는 것은 아니다. 경로들은 끊임없이 신호를 주고받고, 그렇게 오간 결과가 하나로 느껴지도록 봉합된다.

매끄럽다는 느낌은 뇌의 구조가 아니라 뇌가 내놓은 결과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