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연선택(natural selection) — 적응은 공짜가 아니다
자연선택(natural selection)은 무작위로 생긴 돌연변이 가운데 번식 적합도를 높인 것이 다음 세대에 더 퍼지는 과정이다. 도달할 목표는 없고, 이득에는 에너지 비용이 붙어 무엇을 내주고 무엇을 얻는 트레이드오프(trade-off)가 따른다.
저녁을 배부르게 먹고도 밤이 되면 단것에 손이 간다. 몸에 좋다는 쓴 나물은 접시에 그대로 남는다. 의지가 약해서라고 하기엔 너무 많은 사람이 똑같다.
혀가 아직 옛날 계산을 되풀이한다
단맛에 끌리고 쓴맛에 밀리는 건 취향이 아니다. 조상들이 늘 마주치던 문제의 답이 미각 선호로 굳었다.
단맛은 열량이 높다는 신호였고 쓴맛은 독이 들었을 수 있다는 신호였다. 답을 잘 낸 개체가 더 많이 남았다. 그 반응이 지금 우리 혀에 있다.
그 혀가 몸 안에서 실제로 무엇을 재는지는 감각과 포만의 문제로 따로 이어진다(세포·감각·생리 기초(cell cycle) — 몸은 어떻게 작동하는가).
돌연변이는 아무 때나 생기고 선택은 뒤늦게 고른다
진화의 재료는 돌연변이(mutation)다. 필요할 때 맞춰 생기지 않는다. 복제하다 무작위로 생기고, 대부분은 해롭거나 아무 상관이 없다.
자연선택은 그중 번식 적합도(reproductive fitness)를 높인 것을 남긴다. 적합도는 잘 산다는 뜻이 아니라 자손을 몇이나 남겼느냐다.
고른다는 말이 오해를 부른다. 더 많이 남긴 쪽이 다음 세대에 더 많아진다는 뜻일 뿐이다. 유리한 돌연변이라는 말도 그 환경에서 그때 유리했다는 뜻이지, 앞으로 쓸모 있을 걸 미리 골랐다는 뜻이 아니다.
단맛을 반기는 반응이 유리했다는 것도 열량이 귀하던 시절 이야기다. 밤마다 단것을 살 수 있는 시대가 올 줄 알고 미리 골라 둔 반응이 아니다.
진화를 설계자에 빗대는 순간 비유는 무너진다. 선택에는 도달할 목표가 없다.
물벼룩이 돌기를 세우고 성장분을 내준다
모든 이득에는 에너지 비용이 붙는다. 하나를 얻는 대신 다른 하나를 내주는 이 맞바꿈이 트레이드오프다.
물벼룩은 포식자가 물에 남긴 화학적 흔적을 느낄 때만 방어용 돌기를 세운다. 늘 달고 있으면 안전하겠지만 그만큼 성장과 번식에 쓸 몫이 준다. 같은 유전자로도 환경에 따라 다른 몸을 만드는 이 성질을 적응적 가소성(adaptive plasticity), 넓게는 표현형 가소성이라고 한다.
쓴맛을 피하는 반응에도 값이 붙어 있다. 독이 들었을지 모르는 걸 걸러 내는 대신, 몸에 좋다는 쓴 나물까지 함께 밀려난다. 접시에 남은 나물이 그 값이다.
몸을 숨길 자리와 배를 채울 자리가 따로 있다
서식지 선택(habitat selection)에서는 생존율이 높은 곳과 번식지로 좋은 곳이 곧잘 어긋난다. 안전한 곳은 먹이가 적고, 먹이가 많은 곳은 몸이 드러난다. 어느 쪽을 택하든 적합도 이득의 일부는 포기한다.
게다가 한 서식지가 먹여 살릴 수 있는 개체 수에는 상한이 있다. 이를 환경 수용력(carrying capacity)이라고 한다.
큰 놈만 골라 잡는 사이에 물고기가 일찍 작아진다
선택이 종에게 좋은 쪽으로 가지도 않는다. 큰 개체부터 그물에 담는 산업적 어업은 일찍, 작게 성숙하는 쪽에 유리한 압력이 된다.
실제로 몇십 년 만에 성숙 연령이 눈에 띄게 내려간 어종들이 있다. 개체 쪽에서 보면 성공한 적응이다. 그런데 어장은 무너진다.
종이 줄어든 자리에서 생태계 전체가 헐거워지는 경로는 따로 살필 값이 있다(E22_생태환경_생태계는 어떻게 무너지는가).
밤에 단것을 찾는 혀가 잘 만든 장치는 아니다
몸에 붙은 게 다 적응은 아니다. 어떤 것은 다른 형질에 딸려 온 부산물이고, 어떤 것은 특별히 해롭지 않아 그냥 남았다.
"이건 무엇에 좋은가"라는 물음에 늘 답이 있다고 여기면 그럴듯한 이야기를 지어내게 된다.
밤마다 단것을 찾는 반응도 그렇다. 그때 그 환경에서 값이 맞았던 답이 아직 남아 있을 뿐이다.
적응이라는 말은 잘 맞춰졌다는 뜻이 아니다. 값을 치르고 남았다는 뜻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