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어 배경지식 E19철학/법/정치3분 · 누구나 열람

홉스·칸트·클라우제비츠(state of nature) — 국가와 전쟁을 어떻게 정당화하는가

자연상태(state of nature)는 지키는 힘이 없어 누구나 서로에게 위협이 되는, 국가 이전의 조건을 가리키는 홉스의 개념이다. 국가가 왜 성립하는가라는 이 물음 위에 칸트의 법치(rule of law)와 클라우제비츠의 전쟁론, 적을 규정하는 문제가 얹힌다.

뉴스에 어느 나라가 국경을 넘었다는 소식이 나온다. 앵커는 그걸 작전이라 부른다. 화면 아래로 사망자 수가 지나간다.

다음 꼭지에서는 한 사람이 다른 한 사람을 죽여 잡혀갔다고 한다. 사람이 죽은 것은 같은데 한쪽만 죄가 된다.

국가는 개인에게 금지된 일을 어떻게 자기 이름으로 할 수 있는가.

두 번째 꼭지에서 그를 데려갈 힘이 나타난다

홉스는 국가가 없는 상태를 먼저 그렸다. 자연상태는 자연이 좋았다는 말이 아니라 지켜 줄 힘이 아무 데도 없다는 말이다. 그런 곳에서는 누구나 남에게 위협이고, 먼저 치는 쪽이 가장 안전하다. 그래서 그 삶은 고독하고 가난하고 험악하고 짧다.

두 번째 꼭지에서 그가 잡혀간 것은 데려갈 힘이 따로 있어서다. 그 힘이 없으면 남은 사람들이 직접 갚아야 한다.

각자가 무엇이든 제 힘으로 할 권리를 내려놓고 하나의 권력에 넘길 때 비로소 안전이 생긴다. 국가는 그 맞바꿈의 산물이다.

법이 그를 묶으면서 동시에 그를 지킨다

칸트는 인간 본성을 홉스만큼 어둡게 본다. 그런데도 그에게 법치는 자유를 깎는 장치가 아니다. 이성적 존재(rational beings)가 스스로 택할 원칙을 밖으로 옮겨 놓은 결과다.

구속력 있는 법적 틀이 있어야 내 자유와 남의 자유가 서로를 지우지 않는다. 법이 없는 곳에는 자유가 아니라 힘센 사람의 자유만 남는다.

잡혀간 사람에게도 재판이 열린다. 아무나 그를 끌고 가 때릴 수는 없다. 법은 그를 묶는 동시에 그를 지킨다.

그래서 칸트는 악마들의 나라에서도 법치가 선다고 했다. 구성원이 저마다 제 이익만 계산해도, 그 계산들이 서로 맞물리게 제도를 짜면 된다. 관건은 사람의 선함이 아니라 설계다.

이성이 스스로 원칙을 세운다는 이 전제가 어디서 나왔는지는 인식의 조건을 따진 칸트 인식론 정리 — 인식의 조건과 자아의 동일성에 있다.

국경을 넘은 군대가 정치의 도구로 움직인다

클라우제비츠가 한 줄로 정리했다. 전쟁은 다른 수단으로 이어지는 정치의 연속(continuation of politics)이다. 전투는 그 자체가 목적이 아니라 정치적 목적에 쓰이는 도구다.

앵커가 그것을 작전이라 부른 것도 같은 말이다. 작전이라는 말에는 그 전투가 무엇에 쓰이려고 벌어졌다는 뜻이 이미 들어 있다.

여기서 논증이 사슬처럼 이어진다. 하나의 전투는 어떤 정치체(political entity)의 목적에 봉사하고, 그 목적은 그 집단의 의지(will)를 드러내며, 그 의지가 누구의 것인지 귀속(attribution)돼야 비로소 전쟁이 된다.

귀속될 주체가 없는 폭력은 전쟁이 아니라 범죄나 소요라 부른다. 첫 꼭지의 화면에는 나라 이름이 붙어 있었다. 붙일 이름이 없으면 같은 장면이 두 번째 꼭지 옆에 놓인다.

화면 속 두 죽음 사이에 선이 그어진다

그렇다면 적(the enemy)은 누구인가. 어제의 동맹이 오늘의 적이 되고, 같은 말을 쓰는 사람들이 서로를 적이라 부른다.

적은 발견되지 않는다. 그때그때 정해지는 우연적 현상에 가깝다. 전쟁의 정당화가 늘 적을 규정하는 데서 시작하는 것도 그래서다.

죽임(killing)과 살인(murder)을 가르는 선은 행위 자체에 있지 않다. 선을 긋는 쪽에 있다. 무엇을 우리 편으로 셀지가 문화마다 다르다는 이야기는 E30_인류학_서구의 잣대로 잴 수 없다에서 한 걸음 더 나아간다.

세 사람이 서로 다른 물음에 답한다

물론 이 셋은 하나의 체계로 포개지지 않는다. 홉스는 왜 복종하는가를, 칸트는 법이 어떤 자유를 주는가를, 클라우제비츠는 전쟁이 무엇의 연장인가를 물었다.

정치철학의 문장이 어렵게 읽히는 것은 낱말 때문이 아니다. 결론이 상식과 반대쪽에 놓여서다. 법은 자유를 줄이지 않고, 전쟁은 정치의 중단이 아니며, 적은 찾아지지 않고 지목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