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어 배경지식 K08서양 철학3분 · 누구나 열람

베이즈 인식론 정리 — 믿음을 정도로 다루기

베이즈 인식론은 믿음을 참·거짓·판단 유보의 세 칸이 아니라 0과 1 사이의 정도로 다루는 인식론이다. 그 정도는 확률의 규칙을 지켜야 하고, 새 증거를 얻으면 조건화 원리에 따라 갱신된다. 믿음의 눈금과 그 눈금을 고치는 절차를 함께 다룬다.

아침에 창밖을 본 사람이 우산을 집었다 놓는다. 하늘은 흐린데 비가 올 것 같지는 않다. 그러다 다시 집어 든다.

비가 온다고 믿느냐고 물으면 답이 궁하다. 믿는다고 하기에는 약하고 안 믿는다고 하기에는 방금 우산을 들었다.

우산을 들었다 놓는 사람이 들어갈 칸이 없다

많은 전통적 인식론자의 틀로는 이 사람을 다루기 어렵다. 참인지 거짓인지 가릴 수 있는 문장을 명제라 한다. 한 명제를 두고 우리가 취할 태도는 셋뿐이다.

참이라고 믿거나, 거짓이라고 믿거나, 판단을 미루거나. 칸이 셋뿐이니 우산을 들었다 놓는 사람은 판단 유보 칸에 들어간다. 창밖을 아예 내다보지 않은 사람과 같은 칸이다.

이 세 칸은 명제에 참과 거짓 두 값만 있다고 보는 K09_과학철학_논리학의 기초의 틀 위에서 나온다. 논리가 명제에 두 값을 주니 태도도 셋이 된다. 다음에 볼 눈금은 이 논리를 버리는 것이 아니라 태도 쪽만 잘게 나눈다.

"믿는다와 안 믿는다 사이는 정말 비어 있는가."

태도를 세 칸이 아니라 눈금 위에 적는다

베이즈주의가 명제 하나하나에 두는 것은 태도의 종류가 아니라 믿음의 정도다. 얼마나 믿는지를 눈금 위의 한 점으로 적는다. 그 값은 0과 1 사이에 있다.

거짓이라고 완전히 확신하면 0, 참이라고 완전히 확신하면 1이다. 대부분의 믿음은 그 사이 어딘가에 있다.

우산을 들었다 놓는 사람은 판단을 미룬 것이 아니다. 비가 온다는 명제를 0.4쯤 믿는 자리에 서 있다. 판단 유보에 가까운 상태도 눈금 위의 한 자리일 뿐 따로 마련된 칸이 아니다.

어긋난 눈금에는 확실히 지는 내기가 딸려 온다

어떤 명제를 0.7만큼 믿으면서 그 부정을 0.6만큼 믿을 수는 없다. 둘을 더하면 1이 되어야 한다. 비가 온다를 0.7만큼 믿었으면 비가 안 온다는 0.3이다.

규칙을 어기면 어떻게 되는지는 내기로 보인다. 어긋난 믿음의 정도를 그대로 내기에 걸면, 어느 쪽이 나오든 손해를 보는 조합을 상대가 짤 수 있다.

비가 와도 잃고 안 와도 잃는 내기를 스스로 떠안는 셈이다. 이것을 더치북 논변이라 한다. 확률 규칙을 지키라는 요구는 신비한 원리가 아니라 스스로 지지 않으려는 요구다.

라디오를 켜기 전에 이미 답을 적어 둔다

새 증거를 얻었을 때 눈금을 어떻게 고칠지는 조건화 원리가 정한다.

어떤 명제가 참이라면 다른 명제를 얼마나 믿겠는가. 그렇게 미리 적어 둔 값이 조건부 믿음이다.

창밖을 보던 사람에게도 그런 값이 있다. 예보가 비라고 나오면 얼마나 믿을지, 라디오를 켜기 전부터 정해 두고 있다.

그러다 그 명제가 참임을 알게 된다. 그때 쥐고 있던 조건부 믿음의 값을 새 믿음의 정도로 삼는다. 증거를 얻은 뒤의 믿음은 그 전에 세워 둔 가정에 이미 들어 있었던 셈이다.

아무 날에나 있는 일로는 눈금이 꿈쩍하지 않는다

어떤 가설이 맞을 때만 일어날 법한 일이 실제로 일어나면 믿음의 정도가 크게 움직인다.

가설이 맞든 틀리든 흔히 일어나는 일이라면 거의 움직이지 않는다. 오늘이 화요일이라는 사실은 비가 오는 날에도 안 오는 날에도 똑같이 흔하다.

새로 알게 된 것과 관련 없는 명제라면 아예 그대로 두어야 한다. 특별한 이유가 없는 한 기존 믿음의 정도를 유지하는 것이 합리적이라는 말이다.

그 정당화로 베이즈주의가 드는 것이 실용적 효율성이다. 특별한 이유 없이 학교를 옮기면 힘만 헛되이 쓰듯, 까닭 없이 눈금을 옮기는 일도 에너지를 불필요하게 소모한다.

반증주의와 총체주의 — 과학은 무엇으로 참이 되는가의 반증은 어긋나는 사례 하나로 이론을 통째로 버리게 한다. 이쪽에서 증거는 눈금을 크게 또는 조금 옮길 뿐이다.

우산을 집기 전의 값은 아무도 못 정해 준다

물론 이 틀에도 빈자리가 있다. 조건화는 갱신의 규칙일 뿐이어서, 창밖을 내다보기 전에 그 사람이 어떤 값을 들고 있었는지는 말해 주지 않는다. 처음에 어떤 값을 들고 시작했는가는 여전히 논쟁거리다.

앞선 인식론은 무엇을 근거로 아는가를 물었다. 이쪽은 얼마나 아는가를 눈금으로 적고, 그 눈금을 고치는 절차를 묻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