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어 배경지식 K05서양 철학3분 · 누구나 열람

목적론과 기계론 정리 — 자연을 설명하는 두 방식

목적론은 사물 안에 그것이 되어야 할 상태가 본성으로 들어 있다고 보는 설명 방식이고, 기계론은 자연에서 목적을 걷어 내고 물질과 그 운동만으로 설명하는 방식이다. 아리스토텔레스의 네 원인에서 환원론과 창발론까지가 이 축 위에 놓인다.

한 사람이 손바닥에 도토리를 올려놓고 들여다본다. 이것을 땅에 묻으면 참나무가 된다. 소나무가 되는 일은 없다.

씨앗 어디를 쪼개 봐도 나무 모양은 없다. 그런데 결과는 늘 정해져 있다. 이 장면 앞에서 서양의 자연 설명이 두 갈래로 갈라졌다.

"무엇이 이것을 저렇게 되게 하는가."

도토리 안에 참나무가 이미 들어 있다고 본다

아리스토텔레스는 한 사물을 설명하려면 네 가지를 물어야 한다고 했다. 무엇으로 되어 있는가, 어떤 꼴을 갖추는가, 무엇이 그것을 있게 했는가, 무엇을 향해 그렇게 되는가.

손바닥의 도토리에 대 본다. 껍질과 속살로 되어 있고, 참나무라는 꼴을 갖추어 가고, 이 도토리를 맺은 어미 참나무가 그것을 있게 했다.

남은 하나가 무엇을 향해 그렇게 되는가다. 답은 참나무다. 같은 흙에 묻힌 솔씨는 같은 비를 받고도 소나무가 된다. 이 넷째가 목적인이다.

자연물에서는 뒤의 셋이 대체로 겹친다. 갖출 꼴도, 그것을 있게 한 것도, 향해 가는 곳도 다 참나무다.

사물 안에는 그것이 되어야 할 상태가 본성으로 들어 있다. 자연물은 그 본성을 향해 스스로 움직인다. 본성은 그렇게 되라고 처음부터 박혀 있는 성질이다.

돌이 아래로 떨어지는 것도 돌에게는 아래가 제자리라서다. 이렇게 목적을 원인 자리에 두는 설명이 목적론이다. 무엇 때문에가 아니라 무엇을 향해서로 답한다.

도토리에서 참나무를 향한 방향을 지운다

이 설명은 이천 년 가까이 버텼다. 먼저 흔든 것이 새 관측이 아니라 설명 방식이 못마땅하다는 불만이었다고 보는 현대 학자들이 있다.

근대 초의 자연철학자들이 되물었다. 도토리 안에 참나무가 될 본성이 있다는 말이 무엇을 더 알려 주는가. 결과를 원인의 이름으로 바꿔 부른 것뿐 아닌가.

게다가 자연에 목적이 있다고 하면 만물을 사람의 쓸모에 맞춰 읽게 된다. 눈은 보라고 생겼다는 식이다.

그래서 목적을 걷어 낸다. 크기와 모양과 위치와 빠르기만 남기고 그 사이에 오가는 힘을 수로 적는다. 그러면 자연이 톱니바퀴처럼 풀린다.

도토리가 참나무를 향한다는 방향을 지운다. 껍질과 물과 볕이 주고받는 작용만 남긴다. 이것이 기계론이고, 세계를 이루는 것은 결국 물질이라는 주장이 물질론이다.

목적이라는 말은 사라지지 않고 자리를 옮긴다. 자연에 붙은 성질이 아니라 만든 자의 의도를 가리키는 말이 된다.

도토리를 쪼개 놓고 물질론 안에서 갈라선다

기계론을 끝까지 밀면 전체를 부분으로 쪼개어 설명하라는 요구가 붙는다. 생명이나 마음도 결국 물질의 운동으로 되돌릴 수 있다는 쪽이 환원론이다.

다른 한쪽에서는 부분을 아무리 모아 놓아도 거기 없던 성질이 새로 솟는다고 본다. 물 분자 하나에는 젖는다는 성질이 없다. 이쪽이 창발론이다.

다만 창발론은 물질 말고 다른 것이 있다는 주장이 아니다. 생명체가 물질로만 되어 있다는 데까지는 인정하고, 물리·화학 법칙만으로 남김없이 설명되지는 않는다고 말할 뿐이다. 물질론 안에서 갈라지는 싸움이다.

쪼갠 조각의 작용을 남김없이 적으면 참나무가 나오는가, 아니면 쪼개는 순간 사라지는 것이 있는가. 마음을 물질의 운동으로 되돌릴 수 있느냐는 물음은 E21_철학법정치_주체와 의식과 몸으로 이어진다.

이번에는 도토리를 보는 쪽으로 물음이 옮겨 간다

앎이 감각이 모아 준 것에서 나온다는 쪽이 경험론이다. 감각에 앞서 이성이 이미 쥔 것이 있다는 쪽이 합리론이다.

경험론이 밀려간 자리에서 칸트가 다시 세운 인식의 조건은 칸트 인식론 정리 — 인식의 조건과 자아의 동일성에서 다룬다.

목적이 자연에서 밀려나 신 앞에 남는다

기계론을 편 사람들도 상당수는 세계 전체를 두고는 신의 목적을 그대로 인정했다. 자연 안의 낱낱 사물에서 목적을 뺐을 뿐이다.

그래도 이 두 축은 서양 철학 지문에서 좀처럼 사라지지 않는다. 낯선 이름이 나와도 그 사람이 자연에 목적을 남기려는 쪽인지 걷어 내려는 쪽인지 먼저 물으면 자리가 잡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