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어 배경지식 K01동양 사상3분 · 누구나 열람

제자백가 정리 — 난세가 낳은 네 갈래 해법

제자백가는 춘추 전국 시대의 혼란 속에서 쏟아져 나온 여러 사상가와 학파를 통틀어 이르는 말이다. 공자는 사람의 덕에서, 노자는 인위를 덜어 내는 데서, 묵자는 모두의 이익에서, 한비자는 법에서 난세의 해법을 찾았다.

한 사람이 성문 밖에서 짐을 다시 꾸린다. 수레에 실은 것은 죽간 몇 다발과 옷가지가 전부다. 이 나라 임금은 그의 말을 끝까지 듣지 않았다.

다음 나라까지 며칠이 걸린다. 그래도 그는 다시 길을 나선다. 그 시대에 이런 사람이 한둘이 아니었다.

주나라 왕실이 힘을 잃은 뒤 오백 년 넘게 전쟁이 이어졌다. 큰 나라가 작은 나라를 삼켰고, 신하가 임금을 죽이는 일도 드물지 않았다.

오래 지켜 온 질서가 더는 굴러가지 않았다. 무엇을 근거로 살아야 하는지 아무도 몰랐다.

그래서 사상이 쏟아져 나왔다. 답이 흔들리면 질문이 생긴다. 이 시기의 사상가들을 묶어 제자백가라고 부른다.

이들이 붙잡은 질문은 하나였다.

"이 어지러움을 어떻게 멈출 것인가."

공자가 임금 앞에 사람다움을 내민다

공자는 원인을 사람에게서 찾았다. 사람이 사람다움을 잃어서 질서가 무너졌다고 봤다. 그가 말한 인()은 남을 아끼는 마음이고, 예()는 그 마음이 겉으로 드러나는 형식이다.

그러니 임금이 먼저 덕을 갖추면 백성은 따라온다. 형벌로 억누르면 백성은 벌만 피하고 부끄러움은 모른다. 성문을 나선 사람이 공자를 따랐다면 임금 앞에서 먼저 사람이 되시라고 말한 셈이다.

그가 말한 인과 예를 천육백 년 뒤에 이()와 기()라는 틀로 다시 세운 체계가 성리학·주자학 정리 — 이·기·심성의 세계관이다.

노자가 손을 떼라는 말을 들고 나온다

노자는 정반대 자리에 섰다. 사람이 자꾸 손을 대서 세상이 어지럽다. 법을 늘리면 죄짓는 사람이 늘고, 이름을 붙이면 그 이름을 두고 다툼이 생긴다.

그러니 만물의 근원인 도()에 맡기고 억지로 하지 말아야 한다. 그것이 무위(無爲)다. 도에 맡긴다는 말은 사람이 정해 놓은 틀을 걷어 내라는 말이다.

노자를 실은 수레는 임금에게 무엇을 하시라고 하지 않는다. 그만두시라고 한다.

묵자는 셈으로 밀고 한비자는 법으로 민다

묵자는 계산에서 출발했다. 전쟁은 내 편과 남의 편을 갈라 보는 데서 시작한다. 그러니 차별 없이 사랑하라고 했다.

다만 근거는 따뜻한 마음이 아니라 이익이었다. 모두가 그렇게 하는 편이 결국 모두에게 이롭다. 이웃 나라를 치지 말라는 말을 셈으로 바꿔 임금 앞에 내밀었다.

옳음을 결과의 이로움으로 재는 이 방식은 E20_철학법정치_옳음을 정의하는 법의 결과주의와 같은 자리에 선다.

한비자는 사람을 믿지 않았다. 사람은 이익을 따라 움직인다고 봤다. 그러니 임금이 덕을 갖추기를 기다릴 게 아니라 법을 세워야 한다.

임금이 쥔 것은 법만이 아니다. 신하를 부리는 기술인 술()과 임금 자리 자체가 내는 힘인 세()가 함께 간다.

그 셋이 갖춰지고 상과 벌만 분명하면 특별히 뛰어나지 않은 임금도 나라를 다스린다. 공자가 임금에게 사람이 되라고 했다면, 한비자는 안 되어도 된다고 했다.

한비자가 반대편 책까지 펼쳐 놓는다

한비자는 『노자』를 풀이한 글까지 남겼다. 자기편 책만 읽은 사람이 아니었다. 다스리지 말라는 책에서 다스릴 근거를 꺼낸 셈이다.

방법은 도의 뜻을 바꾸는 것이 아니라 거기에 하나를 더 얹는 것이었다. 도가 만물의 근원이라는 데까지는 노자와 같았다. 다만 한비자는 그 도를 사물과 사건마다 들어 있는 개별 법칙을 다 합친 것으로도 봤다.

도가 그런 것이라면 도를 기준으로 옳고 그름을 가릴 수 있다. 그 도에 기대어 법도 만든다. 손댈 수 없던 근원이 손에 쥐는 잣대 노릇까지 한다.

낯선 이름이 나와도 수레 안이 보인다

물론 네 갈래라는 구분은 후대가 정리한 것이다. 당시에는 학파의 경계가 이보다 흐렸고, 한 사람의 생각 안에 여러 갈래가 섞여 있기도 했다.

그래도 이 지형을 알아 두면 달라진다. 처음 보는 이름이 나와도 그가 무엇을 문제로 보고 무엇을 해법으로 내놓는지 자리가 잡힌다. 앞사람의 말을 어느 쪽으로 돌려놓았는지도 따라갈 수 있다.

성문 밖에서 짐을 꾸리던 사람의 수레에 무엇이 실렸는지 묻는 일이다. 동양 사상은 오랫동안 그렇게 이어져 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