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리학·주자학 정리 — 이·기·심성의 세계관
주자학은 남송의 주희가 완성한 유학 체계로, 성리학이라고도 한다. 세상은 그렇게 되는 까닭인 이(理)와 그것이 모양을 갖추는 재료인 기(氣)로 이루어지고, 사람의 본성도 하늘이 준 이가 안에 들어온 것이라고 본다.
한 선비가 『논어』를 펴 놓는다. 공자의 말은 한 줄인데 그 아래 작은 글씨로 붙은 풀이는 열 줄이 넘는다.
그가 읽는 것은 공자만이 아니다. 천육백 년 뒤 사람이 그 한 줄을 어떻게 읽었는지를 함께 읽는다. 그 풀이를 붙인 사람이 남송의 주희다.
불교가 던진 물음에 유학이 답을 못 한다
공자는 하늘이나 사람의 본성을 길게 말하지 않았다. 어떻게 살아야 하는지는 말했다. 왜 그것이 옳은지는 따로 세우지 않았다.
그사이 불교가 들어와 마음과 세계를 촘촘하게 설명했다. 유학에는 맞받을 말이 부족했다. 한 줄 아래 열 줄이 붙은 자리가 그 부족한 말을 채운 자리다.
송의 유학자들이 그 빈자리를 메우려고 세운 체계가 성리학이고, 주희가 정리했다 하여 주자학이라 부른다.
배는 물 위로 가고 수레는 땅 위로 간다
뼈대는 두 글자다. 이(理)는 사물이 그렇게 되는 까닭이고 마땅히 그래야 하는 기준이다. 기(氣)는 그 이가 모양을 갖추는 재료이자 힘이다.
배와 수레가 각각 제 길로 가는 것은 이 때문이다. 어떤 배는 튼튼하고 어떤 배는 낡은 것은 기 때문이다. 무엇이어야 하는가가 이고, 지금 어떤 모습인가가 기다.
흐린 기가 본래 있던 본성을 가린다
이 틀을 사람에게 옮기면 성즉리(性卽理)가 된다. 하늘이 준 이가 사람 안에 들어온 것이 본성이라는 말이다.
남을 아끼고, 부끄러워하고, 사양하고, 옳고 그름을 가리는 마음으로 드러나는 본성이 인의예지다. 배워서 얻는 것이 아니라 날 때부터 지니고 나온다.
그런데도 사람이 악을 저지르는 것은 기가 흐린 탓이다. 본성이 없어서가 아니다. 흐린 기에 가려 보이지 않을 뿐이다.
그래서 흐린 기를 맑히는 수양이 필요하고, 그 방법의 한 축이 격물치지다. 격물은 사물에 다가가는 일이고 치지는 앎에 이르는 일이다. 이치를 하나씩 끝까지 캐면 언젠가 앎이 환하게 트인다.
선비가 한 줄 아래 열 줄을 한 자씩 짚어 가는 일도 그 캐는 일에 든다.
열 줄을 쓴 쪽이 누가 바깥인지 정한다
요순에서 공자와 맹자로 이어지다 끊긴 도의 줄기를 자신들이 다시 이었다. 그 자부가 도통(道統)이다. 그 줄기 바깥은 이단이 된다. 줄기에서 벗어난 가르침이라는 뜻이다.
불교와 도가가 그 자리에 놓였다. 그 도가의 뿌리인 노자는 제자백가 정리 — 난세가 낳은 네 갈래 해법에서 공자와 정반대 자리에 섰던 사람이다.
밀어낸 책을 세 사람이 저마다 다르게 읽는다
배척했다는 말은 절반만 맞다. 유학자들은 『노자』를 계속 주석했다. 밀어낸 책 아래에도 똑같이 작은 글씨가 쌓였다.
송의 왕안석은 노자의 도를 만물의 물질적 근원인 기(氣)로 읽었다. 다만 인위를 걷어 내야 세상이 다스려진다는 말은 비판했다. 인간 사회에는 제도와 규범을 새로 세우는 개입이 필요하다고 봤다.
원의 오징은 노자의 도가 유학의 도와 어긋나지 않는다고 보아 노자를 자기편 계보 안쪽으로 당겨 왔다. 인의예지도 도가 쇠퇴해서 생긴 것이 아니라 도가 현실로 드러난 것이라고 읽었다.
명의 설혜는 노자를 이단으로 모는 데 반대했다. 인의를 비판한 말은 인의를 버리라는 뜻이 아니라 도덕을 근본으로 삼게 하려는 충고라고 읽었다.
세 사람 앞에 놓인 원전은 같은 책이다. 갈린 것은 그 아래에 붙은 열 줄이다.
뒷사람들이 그 열 줄을 두고 다시 다툰다
물론 주자학이 처음부터 하나로 완결된 체계는 아니었다. 이와 기 가운데 무엇이 앞서는지, 마음과 본성을 어떻게 나눌지를 두고 후대는 오래 다투었다. 조선에서는 그 다툼이 수백 년을 갔다.
그 사이 마음의 이치 대신 수레와 벽돌로 눈을 돌린 흐름이 조선 후기 실학 정리 — 서학 수용과 흔들리는 중화 질서이다.
같은 원전을 시대마다 다시 주석한다는 것은 원전이 부족해서가 아니다. 자기 시대의 물음을 옛 글에 물어보는 일이다.
그래서 주석에는 원전보다 주석한 사람이 더 선명하게 남는다. 선비가 펴 놓은 그 지면에서 이름이 굵게 남은 쪽도 결국 주희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