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어 배경지식 K18생명 과학3분 · 누구나 열람

물질대사와 기초 대사량 — 몸은 에너지를 어떻게 얻고 쓰는가

물질대사는 몸속에서 물질을 쪼개고 다시 이어 붙이며 일어나는 화학 반응 전체다. 큰 분자를 잘라 에너지를 꺼내는 이화와 작은 분자를 잇는 동화, 효소가 열어 주는 소화의 길, 그리고 몸무게가 늘어난 만큼 따라 늘지는 않는 대사량이 그 줄기다.

소 한 마리가 풀을 삼켰다가 한참 뒤에 도로 올려 다시 씹는다. 하루의 절반을 그렇게 보낸다.

사람은 같은 풀을 아무리 오래 씹어도 얻는 게 거의 없다. 같은 풀인데 한쪽에서는 살과 힘이 되고 한쪽에서는 그냥 지나간다.

소가 삼킨 풀을 효소가 토막 낸다

먹은 것이 몸의 일부가 되거나 힘으로 바뀐다. 그 사이에 일어나는 화학 변화 전체가 물질대사다. 방향은 둘이다.

작은 분자를 이어 붙여 큰 분자를 만드는 쪽이 동화, 큰 분자를 쪼개 에너지를 꺼내는 쪽이 이화다. 몸과 같아지게 만드니 동화, 다른 것으로 바꿔 놓으니 이화다. 풀의 큰 분자를 잘라 힘을 얻으면 이화고, 그 조각으로 소의 살을 지으면 동화다.

이 반응들은 그냥 두면 거의 일어나지 않는다. 효소가 붙어야 한다. 효소는 특정한 반응만 골라 빠르게 만드는 단백질이다. 자기 짝이 되는 물질에만 달라붙는다.

그래서 오래 씹는 것만으로는 모자란다. 이빨은 풀을 잘게 부술 뿐이다. 분자와 분자의 연결은 끊지 못한다. 이 반응들이 세포와 기관에서 어떻게 맞물리는지는 세포·감각·생리 기초(cell cycle) — 몸은 어떻게 작동하는가가 이어받는다.

소는 없는 효소를 미생물에게 빌린다

소화는 그 입구다. 덩치 큰 영양소를 몸이 흡수할 수 있을 만큼 잘게 끊는 일이다.

풀의 대부분은 섬유소다. 포도당이 길게 이어진 사슬인데, 이어 붙은 방식이 녹말과 다르다. 사람을 비롯한 대부분의 동물은 그 연결을 끊는 효소가 없다. 사람이 풀에서 얻는 게 없는 이유가 여기다.

소도 그 효소를 스스로 만들지는 않는다. 대신 빌린다. 반추동물의 첫째 위인 반추위에는 미생물이 산다.

산소가 거의 없는 그곳에서 미생물은 섬유소를 발효시켜 자기 에너지를 얻는다. 그때 나온 지방산을 소가 받아 쓴다. 미생물 자신도 뒤쪽 소화관으로 넘어가 단백질이 된다. 소는 풀을 먹으면서 그 풀을 먹는 미생물을 함께 기르는 셈이다.

곡물이 쏟아지면 빌린 힘이 뒤집힌다

미생물은 종류마다 대사산물이 다르다. 대사를 하고 남기는 물질이 다르다는 말이다.

곡물처럼 쉽게 쪼개지는 먹이를 갑자기 많이 준다. 젖산 같은 산을 내놓는 미생물이 급격히 늘고 반추위가 산성으로 기운다. 섬유소를 쪼개던 미생물은 산성에서 잘 자라지 못해 줄어든다. 줄어들면 산은 더 쌓인다.

이 뒤집힘을 급성 반추위 산성증이라 하고, 소가 여기서 죽기도 한다.

여기까지가 풀이 소의 몸이 되는 길이다.

"그럼 몸은 하루에 얼마를 쓰나."

멈춰 선 소에게도 몫이 계속 들어간다

아무 일도 않고 살아만 있는 데 드는 최소한의 에너지가 기초 대사량이다. 되새김질을 멈추고 가만히 서 있어도 그 몫은 줄지 않는다. 몸에서 빠져나가는 열을 직접 재거나, 들이마신 산소의 양으로 거꾸로 계산해 구한다.

몸이 크면 대사량도 크다. 얼마나 큰가에서 갈린다. 열은 피부로 빠져나간다. 그래서 대사량이 몸 표면의 넓이를 따라가리라고 오래 짐작했다.

여러 동물의 자료를 모아 보니 지수는 그보다 컸다. 4분의 3에 가까웠다. 클라이버 법칙이라 부른다. 몸무게가 늘어난 배수보다 대사량이 덜 늘어난다는 뜻이다.

그래서 코끼리는 생쥐보다 몸 1킬로그램당 훨씬 적은 에너지를 쓴다.

흩어진 점들 사이로 직선 하나가 지나간다

한쪽이 다른 쪽의 거듭제곱에 비례한다. 이런 관계는 양쪽에 상용로그를 취해 그리면 곧은 직선이 된다. 그 직선의 기울기가 곧 지수다.

직선은 이렇게 긋는다. 각 점이 직선에서 벗어난 정도를 제곱해 모두 더한 값이 가장 작아지는 자리에 놓는다. 흩어진 자료에서 값 하나를 뽑아내는 이런 처리는 K22_기술_데이터를 값으로와 맞닿는다.

물론 4분의 3이 모든 생물에 그대로 들어맞지는 않는다. 어떤 종을 묶어 재느냐에 따라 지수는 흔들린다. 왜 하필 그 값인지도 아직 논쟁이 끝나지 않았다.

몸을 읽는 두 방향이 여기 다 있다. 풀이 무엇으로 바뀌어 소의 살이 되는지 따라가는 쪽, 그 소가 하루에 얼마를 쓰는지 수로 재는 쪽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