리더십과 협상(negotiation) — 조직은 어떻게 움직이는가
위임(delegation)은 일을 덜어 내는 요령이 아니라 다음 사람을 만드는 장치다. 현상 유지에 질문을 던지는 리더십, 쟁점을 쪼개는 협상, 목표에서 출발하는 마케팅, 싸우면서 손잡는 협조적 경쟁(coopetition)이 조직을 움직이는 말들이다.
동아리 부장을 맡은 학생이 있다. 공연이 2주 앞인데 일이 자기한테만 몰린다. 남에게 설명하고 확인받느니 그냥 자기가 하는 게 빠르다.
공연은 그럭저럭 끝난다. 그런데 다음 해에 그 동아리를 이어받겠다는 사람이 없다.
부장이 설명할 시간을 아끼다 후임을 잃는다
위임은 일을 덜어 내는 요령이 아니다. 일을 넘기려면 무엇을 왜 하는지 말로 옮겨야 한다. 그러는 사이에 혼자 알던 것이 조직의 것이 된다.
부장이 혼자 다 해낸 그 해에 동아리가 잃은 건 부장의 시간이 아니다. 다음 부장이다.
탈 없이 굴러가는 공연에 부장이 왜냐고 묻는다
리더십을 발휘한다는 말은 대개 잘 굴러가는 현상 유지(status quo)를 흔든다는 뜻이다.
부장 자리에 앉는다고 리더십이 생기지는 않는다. 해마다 하던 대로 공연을 올려도 탈은 없다. 그 방식을 왜 그대로 두느냐고 묻는 쪽이 리더십이다. 그러려면 익숙한 안전지대(comfort zone)를 떠나 경계 밖으로 나서야 한다.
조직문화도 그렇다. 정직이나 존중 같은 말을 벽에 붙여 둔다고 달라지는 건 없다.
그 말이 "회의에서 반대 의견을 먼저 묻는다" 같은 행동으로 바뀌어 실행 지침에 적혀야 매일 쓰는 말이 된다. 회칙에 적힌 존중과 회의에서 누구에게 먼저 말을 시키느냐는 다른 이야기다.
남의 눈치를 살피며 규범을 따르는 건 조직 밖에서도 같다(동조와 사회 규범(conformity) — 남이 보고 있을 때 우리는 달라진다).
무대 이틀을 한 덩어리로 걸어 놓고 마주 앉는다
두 쪽이 한 덩어리를 놓고 붙으면 전부 아니면 전무가 된다. 이긴 쪽만 웃고 나머지는 빈손이다.
그래서 쟁점을 잘게 쪼개라고 말한다. 날짜와 시간대와 조명 장비와 뒷정리를 따로 떼어 놓으면 합의를 하나씩 쌓아 갈 수 있다. 조각을 이렇게 떼어 가는 방식을 살라미 전술(salami tactics)이라 한다.
협상의 목적이 늘 타결도 아니다. 상대의 사정을 알아내는 정보 수집이나 시간 벌기도 협상이 하는 일이다. 화해 불가능해 보이는 상대를 굳이 앉혀 두는 자리에는 그런 몫이 있다.
포스터 붙일 자리부터 고르다 목표를 놓친다
사업 목표에서 출발해야 무엇이 얼마나 나아졌는지 잴 수 있다. 그런데 마케팅에서는 어떤 채널을 쓸지 먼저 정하고 무엇을 이루려는지는 나중에 생각하기 쉽다. 포스터를 어디에 붙일지부터 정하면 관객을 늘리려던 건지 부원을 늘리려던 건지 흐려진다.
고객 응대도 그렇다. 불만에는 대개 답하면서 브랜드 칭찬은 그냥 지나친다. 공연이 별로였다는 댓글에는 답하고 좋았다는 댓글은 넘기는 셈이다. 알아봐 준 고객이 단단한 팬이 된다.
무대를 다투던 동아리들이 축제를 함께 떠받친다
경쟁의 단위부터 옮겨 간다. 가치사슬(value chain)은 원료가 제품이 되어 팔리기까지 값이 붙는 단계를 한 줄로 이어 놓은 말이다.
한 회사 안의 사슬만 보던 시야가 넓어진다. 이제는 여러 회사가 공동 플랫폼을 사이에 두고 얽힌 생태계(ecosystem)를 본다. 동아리 하나가 아니라 축제 전체를 보는 셈이다.
그 안에서는 같은 상대와 싸우면서 동시에 손을 잡는다. 이를 협조적 경쟁(coopetition)이라 한다.
리그의 구단들은 우승을 두고 다투지만 리그가 죽으면 다 같이 죽는다. 무대 시간을 두고 다투던 동아리들도 축제가 없어지면 함께 설 자리를 잃는다.
각자 이득만 챙기다 판 자체를 망가뜨리는 구조와 같은 자리다(공유지의 비극(tragedy of the commons) — 각자 이득을 챙기면 왜 다 같이 손해 보는가).
말은 유행을 타고 물음은 그대로 남는다
다만 이 말들의 성격은 물리학의 용어와 다르다. 실무의 편의에서 나온 게 많아 정의가 느슨하고 유행을 탄다. 십 년 전 경영서의 핵심어가 지금 책에는 아예 없기도 하다.
그래도 이 말들이 가리키는 문제는 오래됐다. 누가 정하고, 누가 하고, 나온 것을 어떻게 나누는가. 조직을 다루는 글은 대체로 이 셋 중 하나에 답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