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어 배경지식 K03동양 사상3분 · 누구나 열람

조선 후기 실학 정리 — 서학 수용과 흔들리는 중화 질서

실학은 조선 후기에 나타난, 세상에 실제로 쓰이는 학문을 앞세운 흐름이다. 명이 무너지고 청이 들어선 뒤 중화 관념이 흔들리면서 청의 문물을 배우자는 북학론, 백성의 삶을 두텁게 하자는 이용후생, 서양 천문학과 천주교를 가려 받는 서학 수용이 함께 나왔다.

한 사람이 북경의 골목에서 걸음을 멈춘다. 벽돌 쌓는 법, 수레바퀴의 폭, 짐을 싣는 방식을 들여다보고 수첩에 적는다.

그는 이 나라를 오랑캐의 나라라고 배우며 자랐다. 그런데 여기 있는 것들이 조선의 것보다 낫다.

명이 무너지고 청이 들어선 뒤 조선 지식인은 오래 앓았다. 중화는 땅 이름이 아니라 문명의 이름이었다. 예악과 문물이 갖춰진 곳이 중화고 그렇지 못한 곳이 오랑캐다.

예악은 의례와 음악이고, 문물은 그 사회가 갖춘 제도와 기물이다.

그러니 중화는 자리를 옮길 수 있는 이름이었다. 그 문명을 지키던 명이 사라지자 이제 조선이 홀로 그것을 잇는다는 생각이 자랐다. 소중화 의식이다.

골목에 선 사람이 수첩을 덮지도 계속 적지도 못하는 자리가 여기다.

"오랑캐가 세운 나라의 문물을 배워도 되는가."

같은 골목을 보고 온 두 사람이 갈라선다

사신 일행으로 청에 다녀오는 길이 사행이다. 박제가는 자신이 본 청의 현실을 조선이 나아갈 가치 기준으로 삼아 『북학의』를 썼다. 그에게 청은 중화가 손상 없이 보존된 곳이었다.

이덕무는 청의 현실을 객관적 태도로 기록했다. 청 문물이 이롭다는 것은 인정하되 그것을 중화가 보존된 모습으로는 보지 않았다.

둘 다 중화 관념을 버리지 않았다. 그 관념을 눈앞의 청에 어떻게 갖다 대느냐에서 갈렸을 뿐이다. 같은 벽돌을 보고도 그것을 중화라 부를지 말지가 달랐다.

그들이 본 청은 마침 번영의 한복판이었다. 명 이래 흘러든 아메리카 은이 세금과 거래의 기준으로 자리 잡으면서 물건이 활발히 돌았다.

그늘도 함께 자랐다. 인구가 급격히 늘자 민간은 새 작물 재배와 개간과 이주로 대응했지만 문제는 풀리지 않았다. 번영과 위기가 같은 뿌리에서 나왔다.

마음의 이치 대신 수레와 벽돌을 캔다

배우자는 쪽이 내건 말이 이용후생이다. 『서경』에서 온 말로, 기물을 편리하게 써서 백성의 삶을 두텁게 한다는 뜻이다.

성리학이 캔 것은 마음의 이치다. 이쪽이 캔 것은 수레와 벽돌과 배다. 수첩에 적힌 목록이 그대로 이 학문의 목록이다. 세상을 다스리는 데 쓰이는 학문을 앞세운 경세치용은 다른 갈래지만 향하는 곳은 멀지 않다.

이들이 등지고 선 성리학의 이()와 기() 구도는 성리학·주자학 정리 — 이·기·심성의 세계관에서 따로 다룬다.

옮겨 적던 수첩 끝에 자기 말이 붙는다

지식을 다루는 방식도 바뀌었다. 유서(類書)는 온갖 지식을 항목별로 갈라 모아 놓은 책이다. 벽돌은 벽돌대로 수레는 수레대로 갈라 적는 수첩을 크게 키운 것이라고 보면 된다.

원래는 남의 글을 옮겨 모으는 일이었다. 조선 후기 실학자들은 증거를 대어 사실을 따져 밝히는 고증을 더하고, 그 끝에 자기 견해인 안설을 붙였다. 옮겨 적던 일이 저술이 되는 지점이 여기다.

들어온 책을 통째로 삼키지는 않는다

바깥에서 들어온 것도 있었다. 예수회 선교사들이 한문으로 옮겨 놓은 천주교 교리서와 서양 천문·역법 책을 북경을 오간 사신들이 들여왔다. 골목의 그 사람보다 백수십 년 앞선 일이다.

이수광은 『지봉유설』에서 서양 관련 지식을 객관적으로 소개했다. 교리 자체를 받아들이지는 않았다. 이익은 서양 천문학의 정확함은 받아들이고 천주교 교리는 물리쳤다. 가려 받았다는 말이다.

이규경은 서양 학문의 뿌리가 본래 중국에 있었다는 중국 원류설을 끌어와 수용을 정당화했다.

늘려 쓰던 틀이 끝내 버티지 못한다

물론 실학이라는 이름은 후대가 붙였다. 이들은 스스로를 성리학 바깥에 세운 적이 없고, 북학파와 성호학파처럼 갈래가 갈려 있었다.

사람은 새것을 만나면 옛 틀을 버리기보다 그 틀을 늘려 새것을 앉힐 자리를 먼저 만든다. 북경 골목의 그 사람도 오랑캐라는 말을 지우지 않은 채 그 옆에 벽돌 쌓는 법을 적었다. 그 틀이 끝내 버티지 못하고 무너지는 시기가 개화와 척사 정리 — 동아시아의 19세기 근대 전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