법조문 읽는 법 — 조건절과 결과절, 요건과 효과
법조문은 어떤 사실이 갖춰져야 하는지를 정한 요건과 그 사실이 갖춰지면 무엇이 일어나는지를 정한 효과로 이루어진다. 요건에도 효과에도 열려 있는 불확정 개념, 효과가 갈리는 기속 행위와 재량 행위, 재량을 스스로 묶는 재량 준칙이 그 위에 얹힌다.
작은 가게를 하나 내려고 민원 창구에 허가 신청 서류를 낸다. 며칠 뒤 통지서가 온다. 허가를 내줄 수 없다고 적혀 있다.
근거로 적힌 조문을 찾아 읽는다. 딱 한 문장이다. 어떤 사정이 있는 경우에는 허가를 하지 아니할 수 있다.
통지서 한 문장이 두 토막으로 잘린다
법조문의 앞쪽은 조건절이다. 어떤 사실이 갖춰져야 하는지를 정해 둔다. 뒤쪽은 결과절이다. 그 사실이 갖춰지면 무엇이 일어나는지를 정해 둔다. 앞을 요건, 뒤를 효과라 한다.
통지서에 적힌 그 한 문장에도 선을 긋는다. 어떤 사정이 있는 경우에는, 까지가 요건이다. 허가를 하지 아니할 수 있다, 가 효과다.
어떤 사정이라는 말이 빈칸으로 남는다
요건이 늘 또렷하지는 않다. 정당한 사유, 현저히, 공공의 이익. 이런 말은 무엇이 거기 해당하는지 미리 다 적어 둘 수가 없다.
뜻이 열려 있어 판단할 여지를 남기는 표현을 불확정 개념이라 한다. 입법자가 게을러서 남긴 빈칸이 아니다. 앞으로 벌어질 일을 다 예상할 수 없어 일부러 열어 둔 자리다. 요건에만 놓이지도 않는다. 부당히 과다하면 적당히 감액할 수 있다는 조문은 앞뒤가 다 열려 있다.
모든 요건이 그렇지는 않다. 서류를 몇 부 내야 하는지, 수수료가 얼마인지는 열어 둘 이유가 없다. 세어 보면 끝난다.
통지서를 받은 사람이 다툴 곳도 여기다. 내 경우가 그 어떤 사정에 들어가느냐. 열린 낱말을 문리와 체계와 역사로, 곧 글자와 법 전체의 짜임과 만들어진 내력으로 갈라 읽는 방법은 담보와 보증 정리 — 빌려준 돈이 돌아오게 하는 장치와 조문 읽기에 있다.
할 수 있다로 끝난 문장이 거부를 가른다
효과 쪽에서도 갈린다. 무엇을 한다고 끝나는 조문에서 행정청은 정해진 대로 해야 한다. 기속 행위다. 할 수 있다고 끝나는 조문에서는 할지 말지, 한다면 어느 정도로 할지를 행정청이 고른다. 재량 행위다.
통지서의 근거 조문은 하지 아니할 수 있다로 끝난다. 그러니 그 거부는 재량 행위다. 하지 아니한다로 끝났다면 창구에 고를 여지가 없다. 같은 사실을 두고도 끝맺음 한 마디에 결론이 갈린다.
옆 가게는 받았는데 나만 못 받는다
재량이 있다고 마음대로는 아니다. 행정청은 대개 스스로 처리 기준을 만들어 둔다. 재량 준칙이다. 준칙은 법령이 아니라 행정 내부의 기준이어서 그대로 하지 않아도 근거 법령 위반은 아니다.
그런데 같은 기준으로 여러 사람을 처리해 오다가 한 사람에게만 다르게 하면 합리적 이유 없는 차별이 된다. 평등 원칙이 걸린다. 스스로 만든 기준이 행정청 자신을 묶는다.
옆 가게는 같은 사정으로 허가를 받았다. 통지서를 받은 사람이 걸고넘어질 자리가 바로 여기다.
계약서 뒤쪽의 위약금이 두 갈래로 갈린다
그가 가게 자리를 빌리며 쓴 계약서에는 위약금이 적혀 있다. 어기면 얼마를 준다는 조항이다.
그것이 손해를 미리 정해 둔 것, 곧 손해 배상 예정액이면 법원이 지나치게 많다고 보고 깎는다. 손해 배상과 별도로 어긴 것 자체를 벌하는 위약벌이면 법원도 깎지 못한다.
앞은 물어 줄 손해를 미리 계산해 둔 것이고, 뒤는 어겼다는 사실 자체에 매기는 벌이다. 적힌 문장은 비슷한데 무엇으로 보느냐에서 갈린다. 위약금이 놓이는 계약과 채무의 뼈대는 법률 행위와 계약 정리 — 채권과 채무, 민법의 뼈대에 있다.
이 눈이 민원 창구 밖에서도 쓰인다
명예훼손도 요건 이야기다. 그 표현이 누구를 가리키는지 특정돼야 성립한다. 이름을 대지 않았어도 주위 사정을 모아 제삼자가 누구인지 알 수 있으면 특정된 것으로 본다.
위헌이냐를 두고 다수 의견과 소수 의견이 갈리는 자리도 대개 같다. 이 요건에 해당하느냐, 제한이 필요한 정도를 넘었느냐다.
물론 조문을 두 토막으로 잘랐다고 답이 나오지는 않는다. 실제 다툼은 거의 전부 요건 쪽에서, 이 사실이 저 말에 해당하느냐를 두고 벌어진다.
그래도 자르는 일이 먼저다. 이 조문이 무엇을 조건으로 걸고 있고 그 결과로 무엇을 정해 두었는지. 법 지문에 인용된 조문은 그 자리를 묻기 위해 실려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