담보와 보증 정리 — 빌려준 돈이 돌아오게 하는 장치와 조문 읽기
보증은 주채무자가 빚을 갚지 못할 때 대신 갚기로 채권자와 맺는 인적 담보다. 물건에 붙는 저당권과 질권이 물적 담보라면 보증은 사람의 재산 전체가 걸리는 쪽이고, 보통 보증이냐 연대 보증이냐에 따라 보증인이 그 청구를 주채무자 쪽으로 미룰 수 있는지가 갈린다.
한 사람이 오랜만에 전화를 받는다. 친구가 사업 자금을 빌리는데 은행이 보증인을 세우라고 했다.
이름만 올려 달라고 한다. 갚는 건 자기가 갚을 테니 서류에 도장 한 번만 찍어 달라고 한다.
은행이 친구 말고 사람을 하나 더 부른다
채권은 갚으라고 요구할 수 있는 권리일 뿐이다. 상대에게 재산이 없으면 요구는 허공에 뜬다.
돈을 빌린 본인을 주채무자라 한다. 은행은 주채무자가 갚지 못하는 날을 미리 셈해 둔다. 그 대비 장치를 통틀어 담보라 한다. 채권과 채무가 계약에서 어떻게 생겨나는지는 법률 행위와 계약 정리 — 채권과 채무, 민법의 뼈대에 있다.
담보라는 한 낱말이 두 갈래로 갈린다
하나는 담보 책임이다. 대가를 주고받는 유상 계약에서 넘겨준 물건에 흠, 곧 하자가 있으면 넘긴 쪽이 물어 줘야 한다. 친구가 그 돈으로 들여놓은 기계가 처음부터 고장 나 있다면 판 사람이 이 책임을 진다. 다만 산 쪽이 계약할 때 그 흠을 알았거나 알 수 있었으면 묻지 못한다. 계약에서 나온 의무이니 성질이 채무다.
다른 하나는 담보 물권이다. 특정한 물건에 붙어 채권 회수를 보장하고, 이쪽은 의무가 아니라 권리다. 앞의 것은 누가 물어 주느냐고 뒤의 것은 무엇을 잡아 두느냐다.
잡을 물건이 없으면 사람을 잡는다
담보 물권 가운데 저당권은 부동산에 설정하되 채무자가 그 집에 계속 산다. 등기부에 적어 두면 된다. 친구에게 잡힐 집이 있었다면 전화는 걸려 오지 않았다.
질권은 물건 자체를 채권자에게 넘겨 둔다. 어느 쪽이든 갚지 않으면 그 물건을 팔아 다른 채권자들보다 먼저 받아 간다. 우선변제다.
물건을 잡으면 물적 담보고 사람을 잡으면 인적 담보다. 잡을 물건이 없을 때 은행이 대신 잡는 것은 다른 사람의 재산 전체다. 보증이 거기 있다.
도장 한 번이 서류를 계약으로 만든다
보증 계약은 채권자와 보증인이 맺는다. 은행과 전화를 받은 사람 사이의 계약이라는 말이다. 부탁을 한 주채무자는 당사자가 아니다.
그리고 보증은 말로 서지 않는다. 이름을 적고 도장을 찍는 기명 날인이나 서명이 담긴 서면이라야 효력이 있다. 전화로 알겠다고 한 말은 아직 아무것도 아니다.
보증 채무는 주채무에 딸려 있다. 주채무가 변제로 사라지면 보증 채무도 함께 사라지고, 주채무보다 무거워지지도 않는다. 이 딸림을 부종성이라 한다.
친구가 다 갚으면 그날로 함께 끝난다. 친구가 진 것보다 더 물어야 하는 일도 없다.
연대 보증인이 미룰 곳을 잃는다
보통의 보증인은 채권자가 먼저 찾아오면 주채무자에게 집행할 재산이 있음을 증명해 그쪽에 먼저 청구하라고 미룰 수 있다. 이렇게 상대의 요구를 막아서는 권리가 항변권이다.
그런데 연대 보증인은 그 권리를 미리 포기한 쪽이다. 은행은 친구를 거치지 않고 처음부터 전액을 청구한다. 이름만 올린다는 말과 실제로 지는 것 사이가 여기서 벌어진다.
낱말 하나에 물어야 할 돈이 걸려 있다
이 모든 것은 조문에 적혀 있다. 문서로 정해 공포한 법, 성문법이다. 그런데 담보라는 한 낱말이 자리에 따라 채무를 가리키기도 하고 권리를 가리키기도 한다.
그래서 조문을 읽는 방법이 갈라진다. 출발점은 문리 해석이다. 낱말의 일상적인 뜻과 문장 구조에 충실하게 읽는다.
문리 해석으로 뜻이 잡히지 않을 때 나머지가 온다. 체계적 해석은 그 조문이 법 전체의 어디에 놓였는지, 앞뒤 조문이나 다른 법률과 어떻게 맞물리는지 본다. 역사적 해석은 그 조문을 만들 때 입법자가 무엇을 막으려 했는지, 어떤 문구를 고쳐 지금 모습이 됐는지 따라간다.
앞의 둘은 지금 적힌 글자에서 출발하고 마지막 것은 그 글자가 놓이기까지의 경로에서 출발한다. 조문을 요건과 효과로 먼저 자르는 일은 법조문 읽는 법 — 조건절과 결과절, 요건과 효과으로 이어진다.
세 방법이 늘 같은 답을 내놓지는 않는다. 문리 해석으로 넓게 읽히던 말이 체계를 따지면 좁아지기도 한다. 그래서 법 지문은 종종 낱말 하나를 붙들고 길게 간다. 그 낱말을 어느 자리에서 읽느냐에 따라 도장을 찍은 사람이 얼마를 무는지가 뒤집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