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어 배경지식 K11과학 철학3분 · 누구나 열람

천동설과 지동설 정리 — 과학혁명의 계보

천동설은 지구를 우주의 중심에 놓고 행성이 주전원을 돌며 움직인다고 본 모형이고, 지동설은 그 중심을 태양으로 옮긴 모형이다. 프톨레마이오스에서 코페르니쿠스와 케플러를 지나 뉴턴의 만유인력에 이르기까지, 하늘을 설명하는 틀이 바뀌어 온 길이다.

밤마다 같은 자리에서 하늘을 적던 사람이 이상한 것을 본다. 화성이 여러 날 동쪽으로 가다가 멈추고, 뒤로 물러났다가, 다시 동쪽으로 간다.

붙박인 별들은 그러지 않는다. 서로 간격을 지킨 채 함께 돌 뿐이다.

"하늘에서 완전한 원운동만 일어난다면 저것은 무엇인가."

프톨레마이오스가 원 위에 원을 하나 더 얹는다

그의 답은 원을 겹치는 것이었다. 행성은 주전원이라는 작은 원을 따라 돌고, 그 원의 중심이 지구를 둘러싼 큰 원 위를 돈다.

두 회전이 겹치면 지구에서 볼 때 행성이 잠시 뒤로 가는 것처럼 보인다. 이 겹침이 노트의 그 며칠을 메운다. 이 모형은 천 년 넘게 별의 위치를 잘 맞혔다.

그 아래에는 아리스토텔레스의 세계가 있었다. 천상은 변하지 않고 완전하며 원운동만 하지만 지상의 것들은 생겼다가 사라진다. 두 영역은 다른 법칙 아래 있었다.

지구가 행성 가운데 하나로 내려앉는다

코페르니쿠스는 중심을 태양으로 옮겼다. 그러면 화성이 뒤로 가는 것은 겉보기 현상이 된다. 안쪽 궤도를 더 빨리 도는 지구가 바깥 행성을 추월할 때만 그렇다. 옆 차를 앞지를 때 그 차가 뒤로 가 보이는 것과 같다.

다만 그도 원운동을 버리지 않아 주전원은 남았고, 예측이 크게 정확해지지도 않았다. 정말로 바뀐 것은 지구의 자리였다. 지구가 행성 가운데 하나가 되면 천상과 지상을 가르던 벽이 흔들린다.

케플러가 8분의 오차 앞에서 원을 버린다

브라헤는 망원경이 나오기 전 맨눈으로 수십 년간 가장 정밀한 기록을 쌓았다. 밤마다 하늘을 적는 일을 평생 한 셈이다.

케플러는 그 기록으로 화성의 궤도를 원에 맞추려 했다. 8분의 오차를 끝내 지우지 못했다. 그는 자료 대신 원을 버렸다.

행성은 타원을 그리며 돌고 태양은 그 두 초점 가운데 하나에 있다. 행성과 태양을 잇는 선은 같은 시간 동안 같은 넓이를 쓸고 지나간다. 그래서 태양에 가까울 때 더 빠르다.

공전 주기의 제곱은 궤도 긴반지름, 곧 가장 긴 지름의 절반을 세제곱한 값에 비례한다. 화성이 언제 어디 있을지를 이 규칙으로 계산한다.

떨어지는 사과가 케플러의 타원과 한 법칙에 묶인다

갈릴레이는 망원경을 하늘로 돌렸다. 목성을 도는 위성 넷과 달의 울퉁불퉁한 표면, 금성이 차고 기우는 모습을 보았다. 맨눈으로 적던 사람이 볼 수 없던 것들이다. 천상이 완전하다는 전제가 관측과 부딪쳤다.

뉴턴은 이것을 하나로 묶었다. 두 물체 사이에는 질량의 곱에 비례하고 거리의 제곱에 반비례하는 힘이 작용한다. 케플러의 타원과 떨어지는 사과가 같은 법칙 아래 들어갔다.

남은 문제는 거리였다. 지구는 점이 아니라 크기를 가진 덩어리인데 어디까지를 재야 하는가.

뉴턴은 구를 아주 작은 부피 조각으로 나누고 조각마다 물체를 당기는 힘을 모두 더했다. 중심에서 같은 거리면 밀도가 같은 구라면, 그 합은 질량 전부가 중심 한 점에 모였을 때의 힘과 같았다. 크기 없이 질량만 가진 한 점, 곧 질점으로 천체를 바꿔 계산해도 되는 근거가 여기서 나온다.

브라헤와 케플러의 이론이 청의 달력에 들어간다

서양 천문학은 16세기 말부터 예수회 선교사를 따라 중국에 들어왔다. 청은 중국 역법에 서양의 모델과 계산법을 얹은 시헌력을 공식 채택했고 조선도 받아들였다.

시헌력이 먼저 받아들인 것은 브라헤의 이론이고 케플러의 이론은 뒤이어 들어와 정확도를 높였다. 하늘을 적고 미리 계산하는 일은 오래전부터 나라의 일이었다.

낯선 지식은 그대로 들어오지 못했다. 서양의 계산과 유학의 이치를 꿰려는 회통의 시도가 뒤따랐다. 서양 천문학이 본래 중국에서 나갔다는 중국기원론이 그 안에서 나왔다.

중화 관념과 서학 수용이 조선에서 어떻게 맞물렸는지는 조선 후기 실학 정리 — 서학 수용과 흔들리는 중화 질서에서 실학의 흐름과 함께 굴러간다.

화성의 그 며칠 앞에서 설명이 또 갈린다

브라헤는 끝까지 지구가 움직인다고 믿지 않았고, 코페르니쿠스의 책은 한동안 계산 도구로만 읽혔다. 무너진 것은 모형만이 아니었다. 하늘과 땅이 서로 다른 법칙을 따른다는 전제가 함께 무너졌다.

밤마다 하늘을 적던 사람이 본 며칠은 그대로다. 그것을 푸는 말만 천오백 년 사이에 몇 번이나 갈렸다. 이렇게 전제째 갈아 끼우는 일을 두고 과학이 무엇으로 참이 되는지 다시 물은 것이 반증주의와 총체주의 — 과학은 무엇으로 참이 되는가의 반증과 패러다임 논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