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어 배경지식 K04동양 사상3분 · 누구나 열람

개화와 척사 정리 — 동아시아의 19세기 근대 전환

개화는 만물의 이치를 열어 일을 이룬다는 유학 어휘였다가 19세기 후반에 서양 문물을 받아들인다는 뜻으로 옮겨 간 말이다. 서양의 힘 앞에서 동아시아는 무엇을 지키고 무엇을 바꿀지를 두고 척사와 동도서기와 제도 개혁으로 갈라졌다.

1842년 여름, 난징 앞 강 위에 떠 있는 영국 군함에서 청의 관리가 조약문에 도장을 찍었다. 항구를 열고 홍콩을 넘기고 배상금을 문다는 내용이었다.

그때까지 청은 자기 나라가 세계의 중심이라고 여겼다. 주변국이 예물을 올리는 것이 조공이고, 그 임금 자리를 청이 인정해 주는 것이 책봉이다.

이 주고받음은 물건 거래가 아니라 질서 그 자체였다. 조선이 그 질서를 어떻게 붙들고 있었는지는 조선 후기 실학 정리 — 서학 수용과 흔들리는 중화 질서의 중화 관념에서 이어진다.

그 질서가 전함 몇 척에 흔들렸다. 아편 전쟁으로 항구가 열렸고, 이십 년 남짓 뒤 두 번째 전쟁에서는 수도가 함락됐다.

결정적인 것은 1894년의 청일 전쟁이었다. 오랫동안 변방으로 여기던 일본에 졌다는 사실이, 서양에 진 것보다 더 크게 다가왔다. 난징의 강 위에서 시작된 흔들림이 오십 년 만에 여기까지 왔다.

조선도 1876년에 문을 열었다. 그 도장이 찍히고 삼십 년이 조금 넘은 때다. 그러면서 물음이 앞에 놓였다.

"무엇을 지키고 무엇을 바꿀 것인가."

개화라는 말이 유학 밖으로 걸어 나온다

이때 쓰인 말이 개화다. 원래 유학 안쪽 어휘였다. 만물의 이치를 열어 일을 이룬다는 개물성무와 백성을 교화해 풍속을 이룬다는 화민성속에서 앞 글자를 따온 말이다.

개항 전까지 개화는 통치자가 하는 일이었다. 변하는 세상에 대한 지식을 넓히고 백성을 교화한다는 뜻이지 서양과는 상관이 없었다.

개항 뒤에 이 말이 서양 문명을 받아들인다는 뜻으로 옮겨 갔다. 낡은 그릇에 새 내용이 담긴 셈이다.

도장이 찍힌 뒤 답이 세 갈래로 갈린다

지키자는 쪽은 척사파였다. 그릇된 것을 물리친다는 말이 척사다. 서양의 물건이 들어오면 윤리가 무너지고 나라가 남의 것이 된다고 보았다. 난징 앞의 그 배에 실려 온 것이 대포만은 아니라는 말이다.

받자는 쪽 안에서도 갈렸다. 도()는 그대로 두고 기()만 받으면 된다는 쪽이 동도서기다. 중국에서는 같은 짜임을 중체서용이라 불렀다. 군함과 대포가 기이고, 사람이 어떻게 살아야 하는가가 도다.

반면 제도까지 바꾸지 않으면 소용없다고 본 이들은 1884년 갑신정변으로 정권을 잡으려다 사흘 만에 무너졌다. 배와 대포를 사 오는 것만으로는 그 배를 보낸 나라를 당해 낼 수 없다고 본 쪽이다.

그 두 해 전에는 신식 군대만 우대하는 데 반발한 구식 군인들이 들고일어나기도 했다.

박은식이 그 선을 학문 안쪽으로 옮겨 긋는다

1905년 외교권을 빼앗기며 나라가 기울자 유학 자체를 고쳐 쓰자는 주장이 나왔다. 박은식은 문명을 두 겹으로 갈랐다. 물질을 다루는 과학은 서양에서 배우되, 가치관과 인격 수양을 맡는 철학은 유학을 뜯어고쳐 다시 세워야 한다고 봤다.

다만 그 유학은 형식과 문구에 갇힌 것이 아니라 실천을 앞세운 것이어야 했다.

그가 고쳐 쓰자고 한 유학, 곧 이와 기로 세상과 마음을 설명하던 체계는 성리학·주자학 정리 — 이·기·심성의 세계관에서 다룬다.

중국에서는 과학이 어디까지 답하느냐로 맞선다

앞선 세대의 옌푸는 진화론을 번역해 소개하며 서양의 힘이 학문하는 방법에 있다고 보았다. 군함이 아니라 그 군함을 만들어 낸 방법이 힘이라는 뜻이다.

1923년에 장쥔마이가 선을 그었다. 과학이 사실은 설명해도 사람이 무엇을 위해 사는가 하는 인생관까지 정해 주지는 못한다고 했다. 천두슈는 인생관도 결국 과학으로 설명된다고 맞섰다.

갈라선 자리에서도 힘은 부정하지 못한다

물론 개화와 척사를 새것과 옛것의 싸움으로만 보면 놓치는 것이 있다. 척사 쪽도 나라를 지키려 했고, 개화 쪽도 무엇을 얼마나 바꿀지에서 서로 갈라져 있었다.

근대 전환기의 글에는 인물이 여럿 나란히 선다. 난징의 강 위에서 도장이 찍힌 뒤로는 서양의 힘을 부정하기 어려웠다.

갈리는 것은 그 힘을 들이면서 무엇을 끝까지 남길 것인가다.